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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은 폭탄 던질 사람", 2003년 '튀는' 언행으로 6자회담 배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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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리비아 모델은 우리가 북한에 고려하고 있는 모델이 아니다”며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언급한 리비아 모델은 (북한과는)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백악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볼턴 보좌관은 옆에 배석해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자료사진,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자료사진, AP=연합뉴스]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성명을 통해 볼턴 보좌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그는 북ㆍ미 정상회담의 ‘잠재적 철거공’(블룸버그)처럼 지목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견해차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리비아식 부인까지 이어지며 ‘볼턴 리스크’가 커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날 “볼턴이 언급한 것은 (협상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당한다. 우리는 결코 그 나라(북한)의 핵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 (비핵화)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 모델(리비아 모델)을 실현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트럼프의 진짜 속마음은 뭘까.

트럼프 집권 초기 백악관 내부를 조명한 책 『화염과 분노』(마이클 울프 저)에는 트럼프의 볼턴에 대한 본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트럼프의 ‘오른팔’로 불리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와 트럼프의 오랜 친구인 로저 에일스 전 폭스뉴스 사장과의 대화에서다. 트럼프가 첫 내각을 구성할 때다.

「배넌은 국가안보보좌관 자리에 강경파 외교관으로 유명한 존 볼턴을 밀어보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볼턴은 에일스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폭탄을 던질 사람입니다.” 에일스가 말했다. “특이한 사람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가 필요해요. 다른 누가 이스라엘을 잘 다룰 수 있습니까? 플린(당시 국가안보보좌관 후보자)은 이란 문제에 대해서 약간 돌았어요. 틸러슨(국무장관 지명자)은 단지 석유만 알지요.” “볼턴은 콧수염이 문제입니다.” 배넌은 코웃음을 쳤다. “트럼프는 볼턴이 쓸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볼턴은 겪어봐야 좋아지지요.”」

볼턴을 추천했던 배넌은 지난해 8월 트럼프와 의견차로 해임됐다. 하지만 볼턴은 그때부터 8개월이 지난 올 4월에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됐다.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는 16일 “볼턴이 스티브 배넌 꼴이 날 수 있다”며 “볼턴은 ‘그림자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고 알려진 배넌처럼 (자신이) 대통령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볼턴은 트럼프의 이란 핵협정 탈퇴 결정을 트위터를 보고 알게 된 처지였을 뿐”이라고 보도했다.

2003년 7월 31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강연하는 볼턴 차관. [중앙포토]

2003년 7월 31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강연하는 볼턴 차관. [중앙포토]

초강경파로 꼽히는 볼턴은 2003년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 시절에도 튀는 발언으로 지적을 받았다. 2003년 7월 31일 한국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의 핵무기 보유 움직임을 여러 차례 강경한 어조로 비난한 것이 논란이 됐다.

「볼턴 차관은 ‘갈림길에 선 독재정권’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金 위원장을 ‘폭군적 독재자’ ‘착취자’ ‘포악한 불량국가 지도자’ 등 원색적인 어조로 표현하고 “김정일은 왕족처럼 살면서 인터넷을 즐기는 것으로 소문난 반면 빈곤에 시달리는 주민들은 인터넷 대신 관제 방송 시청을 강요당하고 있다”며 북한 주민의 삶을 ‘지옥 같은 악몽’에 비유했다. …(중략)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상당한 진전이 있다”고 언급한 직후 나온 볼턴 차관의 발언은 과거 북한에 대해 강경 발언을 자주 해온 그의 성향을 감안하더라도 ‘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중앙일보 2003년 8월 1일 자 4면)

이후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이 우리와 회담을 하자는 그 진의 자체가 의심스러워진다”며 볼턴 차관이 6자회담에서 나서지 말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또 볼턴 차관을 “인간쓰레기, 피에 주린 흡혈귀”라고 맹비난했다. 결국 2003년 8월 베이징에서 6자 회담이 처음 시작됐을 때 그는 배제됐다. 그러나 볼턴 보좌관은 2007년 펴낸 회고록 『항복은 옵션이 아니다』에서 당시 북한의 원색적 비난을 “부시 행정부 재직 기간 중 내가 받았던 최고의 찬사”라고 평했다.

이 때문에 김계관 부상이 성명을 통해 볼턴을 직접 겨냥한 것은 이번 협상 테이블에서도 볼턴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CNN은 이날 “김정은 정권이 긴장의 불길을 부채질하고 있는 전선은 비무장지대(DMZ)가 아니라 백악관 내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 사이”라고 보도했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트럼프도 북한 비핵화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주제이고, 만에 하나 북ㆍ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는 경우 볼턴이 대북 강경책을 펼칠 싸움닭으로 효용이 크다”며 “현재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과 공화당 다수의 의회 구도가 북ㆍ미 합의를 실행할 최적의 조건인데, 볼턴이 만일 해고돼 (보수적인) 폭스 뉴스에서 강경발언을 쏟아낸다면 트럼프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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