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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개입, 매수·매도 차액만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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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외환 당국이 결국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기로 했다. 공개 주기는 3개월 단위, 공개 대상은 순거래 내역이다. 시장에서는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와 함께 “외환 당국이 시장 개입에 부담을 느낄 경우 원화 강세에 속도가 붙어 수출 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석 달마다 공개, 1년간은 반기별로 #사고판 내용 일일이 안밝혀 덜 부담 #당국 환율 대응 소극적 될 가능성 #“원화 강세 빨라져 수출 타격” 우려

정부는 17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 방안을 확정했다. 정부는 한국은행과 외국환평형기금 등 외환 당국의 외환 순거래 내역만 공개하기로 했다. 순거래 내역은 총 매수액에서 총 매도액을 뺀 것이다. 예를 들어 공개대상 기간의 총 매수액과 총 매도액이 각각 100억원일 경우 외환 당국은 순거래액인 0원만 공개하면 된다.

외환을 사고판 내용을 일일이 공개하지 않고 최종 결과물만 공개하면 되기 때문에 매수, 매도 내역을 모두 공개하는 것보다는 부담이 다소 작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이유로 기획재정부와 한은도 그동안 국제통화기금(IMF)이나 미국 등과의 협의 과정에서 순거래 내역 공개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공개 주기는 3개월 단위지만 시장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1년간은 한시적으로 반기별 공개를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는 반기별로 공개되고, 내년 3분기부터는 3개월에 한 번씩 분기별로 거래 내역이 공개된다. 공개 대상 기간이 종료된 지 3개월 이내에 한국은행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형태로 공개된다. 첫 공개 시점은 올해 하반기의 외환시장 개입 내역이 공개되는 내년 3월 말이다.

김 부총리는 이날 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시장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심했다. 대부분의 개입 내역 공개 국가들이 월 단위로 공개하는데 한국은 일단 6개월 주기로 공개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 중인 국가들은 분기별 공개 중인 미국, 1년에 한 번 공개하는 스위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주·월 단위로 공개하고 있다.

김 부총리는 “1년 뒤 분기별로 공개한다 해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는 훨씬 안정적인 과정을 밟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책 변화에 대한 시장의 적응과 조정을 위해 최소 범위에서 안정적인 내용으로 공개 방침을 정했다고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정부가 다자간 무역협정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긍정 검토 중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CPTPP의 전신인 TPP는 회원국들이 외환시장 개입 내역과 관련해 분기별(3개월)로 매수, 매도 총액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는 6개월 단위로 순거래 내역만 공개해도 된다는 예외를 인정받았다. 한국이 CPTPP에 가입하려면 어차피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얘기다.

시장에서는 앞으로 외환 당국이 외환시장 개입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당초 걱정했던 것보다는 완화된 형태로 공개하는 것이라 당장 외환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투기 세력에 공격 빌미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한국은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커 늘 주시받고 있는 국가인 만큼 원화 가치 상승 압력이 커질 때 당국이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도 “순거래 내역만 공개한다 해도 개입의 방향성을 보여주게 되는 만큼 환율에 대해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고 봐야 한다”며 “이 때문에 원화 강세 속도가 빨라져 수출 기업들이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도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개입 내역을 공개하더라도 환율이 급변동하거나 급격하게 한쪽으로 쏠릴 경우 필요한 시장 안정조치를 한다는 기존의 외환정책 원칙은 변함없이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박진석·하남현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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