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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의 ‘특별한 사제지간’…전교생 한 명인 장도분교

중앙일보

입력

전남 보성 벌교 장도분교의 유일한 학생 6학년 김이건군과 교사 김성현씨. [사진 김성현씨]

전남 보성 벌교 장도분교의 유일한 학생 6학년 김이건군과 교사 김성현씨. [사진 김성현씨]

녹차로 유명한 전남 보성에는 특별한 섬 하나가 있다. 보성의 유일한 유인도인 벌교읍 장도(獐島)다. 벌교 장암리에서 남동쪽 3.8㎞ 해상에 위치한 면적 2.92㎢, 해안선 15.9㎞ 규모의 작은 섬으로 꼬막·짱뚱어가 나오는 갯벌이 아름다운 곳이다.

6학년 김이건군과 교사 김성현씨 부자지간처럼 공부

하늘에서 보면 노루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의 장도에는 주민 약 300명이 산다. 대다수가 60~70대 이상 고령이다. 이 섬의 유일한 학교는 벌교초등학교 장도분교장. 전교생은 단 한 명이다. 현재 6학년인 김이건(13)군이다.

전남 보성 벌교 장도분교의 유일한 학생 6학년 김이건군과 교사 김성현씨. [사진 김성현씨]

전남 보성 벌교 장도분교의 유일한 학생 6학년 김이건군과 교사 김성현씨. [사진 김성현씨]

장도분교의 선생님 역시 한 명이다. 지난해 3월 부임한 8년 차 경력의 김성현(34) 교사다. 원래 전남 고흥이 집인 김 교사는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학교 옆 관사에서 지낸다.

학생 한 명에 교사 한 명인 섬마을 학교의 모습은 도심과는 사뭇 다르다.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김군의 학교 수업은 오전 9시쯤 시작된다. 수업은 당연히 일대일로 진행된다. ‘40분 수업 후 10분 휴식’이라는 규칙은 때때로 유연하게 적용된다. 볕이 좋은 날엔 예정에 없던 공기 좋은 학교 주변에서 야외수업도 한다.

전남 보성 벌교 장도분교의 유일한 학생 6학년 김이건군과 교사 김성현씨가 공부하는 학교. [사진 김성현씨]

전남 보성 벌교 장도분교의 유일한 학생 6학년 김이건군과 교사 김성현씨가 공부하는 학교. [사진 김성현씨]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때때로 교내 식당으로 옮겨 수업하기도 한다. 김 교사가 직접 점심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이건이와 먹을 밥을 안친 뒤 간단한 반찬을 준비하고 밥이 될 때까지 수업하기도 한다”며 “학교 규모가 작아서 영양사ㆍ조리사 역할까지 당연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교내와 섬 곳곳은 학습 공간이다. 학교에는 텃밭을 가꿨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땀을 흘리며 키운 오이ㆍ당근은 점심 식재료가 된다. 참외ㆍ토마토는 달콤한 디저트다. 서툰 솜씨로 키운 닭 2마리가 낳은 계란으로는 프라이를 해 먹는다. 학교 주변 갯벌은 놀이터다.

전남 보성 벌교 장도분교의 유일한 학생 6학년 김이건군과 교사 김성현씨. [사진 김성현씨]

전남 보성 벌교 장도분교의 유일한 학생 6학년 김이건군과 교사 김성현씨. [사진 김성현씨]

선생님과 학생보다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보이는 두 사람은 매주 수요일 배를 타고 특별한 외출을 한다. 본교인 벌교초에서 열리는 공동학습을 위해서다. 배와 차를 갈아타면 왕복 2시간가량 걸린다. 장도항과 벌교 상진항을 오가는 배는 물때에 맞춰 오전과 오후 각 한 차례만 운행된다. 육지에 나왔다가 기상 악화로 배가 뜨지 못하면 김 교사의 집인 고흥에서 사제가 함께 자는 날도 많다.

단둘이 떠나는 체험학습은 여행이나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제주도, 강원도 평창에서 특별한 추억을 쌓았다. 자전거 여행을 가기도 했다. 김 교사는 “아내가 7살, 4살인 두 아들을 데리고 장도에 오기도 한다”며 “일주일에 사흘 정도는 두 아들이 친형제처럼 어울려 논다”고 했다.

전남 보성 벌교 장도분교의 유일한 학생 6학년 김이건군과 교사 김성현씨. [사진 김성현씨]

전남 보성 벌교 장도분교의 유일한 학생 6학년 김이건군과 교사 김성현씨. [사진 김성현씨]

김군이 처음부터 혼자 학교에 다닌 건 아니었다. 3, 4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학교 친구 한 명이 있었다. 장도보건진료소장의 자녀였다. 그러나 진료소장이 발령이 나면서 친구가 전학을 가고 5학년 때인 지난해 유일한 전교생이 됐다. 이 무렵 부임한 김 교사와 더욱 가까워진 계기다. 김군은 돈을 벌기 위해 타지에서 머무르는 아버지를 대신해 조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김군이 다니는 장도분교는 1945년 5월 장도간이학교로 문을 열었다. 이듬해 장도국민학교로 승격했지만, 학생 수 감소에 따라 99년 9월 벌교초교 장도분교장으로 격하됐다. 해마다 전교생이 2, 3명 안팎에 불과하더니 올해 1명이 됐다. 김군이 마지막 졸업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통상 초교가 복식학급으로 운영되거나 3년 이상 신입생이 없는 경우 분교장이 되고 분교장에서도 학생 수가 크게 줄면 학부모 과반 이상의 찬성으로 휴교 조치가 이뤄진다. 이후 폐교 절차를 논의한다.

현재 장도에는 약 한 달 전 태어난 신생아가 있지만 향후 몇 년간 학교에 다닐만한 연령대의 아이들은 없다. 김 교사는 “내년 초 이건이가 졸업을 하면 당장 폐교는 아니더라도 휴교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며 “이건이가 중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수업과 함께 좋은 추억을 쌓고 싶다”고 말했다.

보성=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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