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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에 휩쓸리지 않는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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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호 32면

책 속으로

시간의 강가에서

시간의 강가에서

시간의 강가에서
맹난자 지음, 북인

일기·편지·기행문·소평론 등 광범위한 산문 글을 통칭하는 에세이라는 글쓰기 장르는 프랑스 문필가 몽테뉴(1533~1592)가 정착시켰다. 그에게 수필(에세이)은 단순한 신변잡기를 시시콜콜 늘어놓는 글이 아니었다. 대표작 『수상록』 의 주요 테마가 죽음과 고통이었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판단을 배제한다’는 글귀를 금과옥조 삼아 겸허한 회의주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자 했다고 한다.

수필가 맹난자씨는 몽테뉴 체제를 충실히 따르기로 작심한 듯하다. ‘존재에 대한 단상’, ‘몸에 대한 사유’, ‘자연에서 배우다’…. 6개 장의 제목부터 묵직하다. 산문집의 핵심 정조는 역시 노년에 대한 의식인 것 같다. 누워서 지내는 날이 점점 많아지면서 이제는 소리를 몸으로 듣는다고 하고, 자신을 키운 건 크게 의지했던 법정 스님 말씀처럼 8할이 가난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도 감각은 오히려 생생해져 감 하나를 깎을 때도 칼날을 통해 손끝에 닿는 강한 저항감을 예민하게 의식한다.

표제작 산문인 ‘시간의 강가에서’는 시간에 관한 작은 논문이라고 해도 될 만큼 다양한 동서 현인들의 시간 해석을 압축해 놓았다. 그 가운데 가장 절실한 건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다.

‘시간은 나를 이루고 있는 본질이다. 시간은 강물이어서 나를 휩쓸어가지만 내가 곧 강이다.’

나는 단순히 속절없이 강물에 떠내려가는 대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것, 시간의 흐름을 오히려 품어 안을 수 있다는 반전이다. 기운이 나는 얘기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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