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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편입학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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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재수를 시켜야 할까, 그래도 보험으로 일단 지방대에 들여보냈다가 편입학으로 인서울을 노려 보는 게 낫지 않을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이른바 ‘인서울’ 혹은 ‘인수도권’이 난망한 상당수 대입 수험생의 학부모들이 갖는 한결같은 고민 중 하나다. 편입학을 준비하는 대학 재학생이 수능 응시생의 3분의 1 수준인 20만 명을 웃돌 지경이니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편입학이 수월한 통로도 아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합격생 수기만 얼핏 봐도 ‘독하게 공부’ ‘무던히 인내’ ‘피나는 노력’ 같은 표현이 숱하다. “입사 자소서에 쓴 편입학 경력이 장점으로 작용했다”는 후일담이 있을 정도다.

이런 편입학은 ‘지방 소규모 대학→지방 거점 대학→수도권 대학→명문대’라는 패턴을 지속해 왔다. ‘학적 서열 높이기’의 방편인 것이다. 학벌 사회의 그늘진 단면이다. 안타까운 건 편입학을 둘러싼 비리와 편법이 끊이지 않아 공분을 사곤 했다는 것이다. 대학이 편입생 모집요강도 제대로 지키지 않기 일쑤인 허술한 관리 시스템 탓이다. 편입학 시즌만 되면 청탁으로 몸살을 앓는다든가 입학처장이 되니 편입학 브로커가 찾아와 가격을 흥정하더란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부정 편입학 적발 사례에 늘 따라다녔던 게 짙게 배인 특권층 냄새다. 1987년에는 국회의원 등 사회지도층 자녀 21명의 편입학 비리가 적발됐다. 93년 공개된 20개 대학 편입학 비리 학생 118명의 학부모 명단에도 기업인과 전직 장관, 국회의원, 교수 등이 다수 포함됐다. 학교법인 임원 자녀의 특혜 비리도 빠지지 않는다. “배경이 없으면 힘들다”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푸념이 나오곤 했던 이유다.

물벼락 갑질에서 시작한 한진그룹 총수 일가 논란이 뜬금없이 부정 편입학 의혹으로 번질 태세다. 인하대 이사장인 조양호 회장의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타깃이다. 인하대 학생·교직원·동문 대표들은 엊그제 교육부의 특별감사를 촉구했다. 98년 인하대 경영학과에 편입학한 조 사장이 학점·학력 등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교육부에 적발되고도 무사히 졸업한 건 문제라면서다.

올해 수도권 68개 대학이 뽑은 편입생은 1만3500여 명이다. 인하대에만 90여 명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합격이 피나는 노력의 결과라고 여길 게다. 아무리 20년 전 일이라고 한들 조 사장의 부정 논란을 지켜보는 시선이 고울 턱이 없다. 이대 정유라 부정입학 사건을 떠올리는 이가 많을 듯싶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