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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국회 … 보이콧의 흑역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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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호 35면

강민석 논설위원

강민석 논설위원

1870년대 아일랜드에 악덕 백작 영지관리인이 살았다. 대기근이 들어 소작농들이 소작료를 깎아달라고 부탁했지만 거부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영지에서 쫓아내려 했다. 마을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똘똘 뭉쳐 영지관리인의 집에서 하인이 철수했고, 우편배달도 거부했다. 급기야 그에게는 먹을 것도 팔지 않는 불매(不賣)운동이 일어났다. 가렴주구(苛斂誅求)의 끝판왕인 관리인이 집단 ‘보이콧’을 당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보이콧 당한 이 사람의 이름이 보이콧이다. 찰스 C. 보이콧(1832∼1897). 지금 거부 운동의 뜻으로 쓰는 보통명사 보이콧은 바로 고유명사 보이콧에서 유래했다.

150년 전 보이콧의 유령이 유달리 자주 출몰하는 대한민국 기관이 있다. 우리 국회 말고 어디 있겠는가.11일 현재도 자유한국당은 국회를 보이콧하고 있다. 근래 9번째 보이콧이라 한다.

한국당은 여당일 때도 국회를 보이콧한 적이 있다. 2016년 10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지금 김성태 원내대표처럼 ‘국회보이콧+단식’ 세트로 투쟁에 돌입했다. 김재수 농림축산부장관 해임안 처리 과정에서 정 의장이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당시 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여당이 국회를 보이콧한다. 별꼴을 다 본다”고 말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민주당도 야당 시절에는 불문곡직하고 보이콧부터 하면서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

역사적인 보이콧도 있다.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시내버스 좌석에 앉았다가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체포된 것에 항의해 일어난, 흑백인종 차별의 변화를 촉발한 1955년의 ‘몽고메리주 버스 보이콧 운동’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국회 보이콧 가운데 역사에 길이 남을 게 있다는 말은 과문한 탓인지 들어보지 못했다.

여당이 홍영표 의원을 11일 새 원내대표로 뽑았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9일간의 단식을 풀고 밥을 먹기로 했다. 안 그래도 10일 단식농성장으로 고별인사를 온 우원식 의원에게 김성태 원내대표가 “(특검)좀 해주고 가지, (단식하느라) 힘들어 죽겠어”라고 푸념했다니 짠했는데 다행이다. 이제 여당이 드루킹 특검 협상에 전향적으로 나서고, 야당은 국회 보이콧을 풀 차례다. 여당 리더십이란게 형님 리더십 아닌가. 그리고 앞으로 혹시 보이콧을 할 정당이 있으면 보이콧이 원래 왕따당한 사람 이름임을 알고서 하시길.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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