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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은하 안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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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초지성적이며 범차원적 종족이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의 해답을 얻기 위해 ‘깊은 생각’이란 거대한 컴퓨터를 만들었고 그걸 750만 년간 돌린 끝에 답을 얻었다. 42였다. 하지만 누구도 이에 도달한 질문이 뭔지 몰랐다. 결국 훨씬 더 큰 컴퓨터를 건설해야 했다. 지구였다. 하도 커서 종종 행성으로 오인됐다.

여기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불행했다. 애당초 나무에서 내려온 것 자체가 엄청난 실수였다는 의견이 점차 퍼졌다. 어떤 이는 바다에서 나오지도 말았어야 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한 남자가 기분 전환도 할 겸 이제는 사람들끼리 좀 잘해주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했다는 이유로 나무에 못 박혔다.

그로부터 약 2000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한 여자가 오랜 세월 내내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고 있었는지 문득 깨달았다. “불편하게 해서 죄송합니다(We apologize for the inconvenience).” 조물주가 피조물에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를 안 후였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속 너스레다. 더글러스는 안내서를 두곤 “무한하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우주 속에서 인생을 이해해 보고자 애쓰는 사람에겐 없어선 안 될 지침서”라고 했다. 그러곤 “중요한 오류가 있다면 잘못된 쪽은 항상 (안내서가 아닌) 현실”이란 넉살도 떨었다. 거대한 우주만큼이나 배포 큰 농담이다.

그런데 진짜 우리 은하(Milky Way)에 대한 ‘안내서’가 지난달 말 나왔다. 2013년 시작된 유럽우주국(ESA) 가이아 위성의 5년 관찰 프로젝트의 중간 결과물인 3차원 지도다. 17억 개 별(태양은 그중 하나다)의 밝기와 위치, 움직임은 물론 일부에 대해선 온도·밀도 등의 정보도 담았다고 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 과학자는 “처음 집에서 봤는데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그저 앉아있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이미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했다. 짧은 동영상만 봤는데도 정말로 그랬다.

사실 나란 존재는 수천억 개 은하 중 하나에, 또 그에 속한 수천억 개 별 중 하나인 태양에, 또 그에 딸린 8개 행성 중 하나인 지구에, 또 거기에 사는 870만 생물종 가운데 하나인 현생인류 76억 개체 중 하나일 뿐이다. 무한소다. 혹자는 그래서 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어쩌랴. 나라 안팎의 이런저런 소식에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때 시선을 무한성에 돌려보면 어떨까. 혹시 아나, 더글러스의 우주와 조우하게 될 수도.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