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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기대보다 우려 앞서는 김정은-시진핑 2차 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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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제와 어제 전격적으로 중국 랴오닝성 다롄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회동했다는 소식은 기대보다 먼저 걱정이 들게 한다. 김 위원장이 3월 말 방중한 지 43일 만에 또다시 중국을 찾은 건 시 주석과 시급히 논의해야 할 급박한 사정이 생긴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 견지와 북·미 대화를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김 위원장은 “관련 당사자가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과 안전에 대한 위협을 해소해 주면 북한은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답했다.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안보 우려를 먼저 제거해 달라는 요구다.

북·미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는 미정인데 #43일 만에 다시 중국으로 달려간 김정은 #비핵화 판 흔드는 이상 기류 조짐 우려

우리가 지난 3월과 달리 김정은-시진핑 2차 회동에 우려의 시선을 던지는 것은 최근 북·미 기(氣) 싸움이 거세지면서 어렵게 만들어진 비핵화 판이 행여 헝클어질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오늘내일 발표가 예상되던 북·미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이상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미국은 현재 북한의 비핵화 수위를 ‘완전하고’를 넘어 ‘영구적인’ 수준으로 상향 조정했다. 폐기 대상도 생화학무기와 핵무기 제조에 참여한 인력 등으로 확대하며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북한 외무성은 “우리의 평화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지 말라”며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중국 언론은 “북·미 회담이 무산돼 원점으로 돌아간다면 국제사회는 큰 실망에 빠질 것”이라며 ‘회담 무산’까지 입에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김 위원장 2차 방중은 북한이 미국과의 회담을 앞두고 중국이란 ‘백’을 내세워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세(勢) 과시 차원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북·미 회담 취소나 결렬 등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이미 들어 둔 ‘중국 보험’이 안전한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일 수 있다. 특히 미국에 대항해 중국산 첫 항공모함의 시험운항이 실시되는 다롄에서 김정은-시진핑 2차 회담이 이뤄졌다는 건 찜찜하다. 미·중 사이도 최근 무역 분쟁으로 악화일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 틈을 파고들며 북·중 밀월을 과시하는 것은 비핵화 판이 깨져도 믿을 구석이 있다는 걸 대내외에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도 도움을 청하는 김 위원장 손길이 싫지만은 않다. 동북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이자 향후 종전 선언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중국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 게임은 살얼음 밟기와 같다. 어느 한 걸음 삐끗했다간 얼음물 속으로 풍덩 빠지며 그동안 기울인 온갖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정부는 이번이 마지막이란 말을 듣는 비핵화 기회를 살리기 위해 무진 애써 왔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북한이 이렇게까지 멀리 온 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이제까지 탁월한 중재 능력을 보여준 문재인 정부가 다시 한번 빼어난 운전 실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