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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있긴 한건가"···文에 가려진 여권 '빅 샷'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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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에 가려…희미한 여권 내 빅 샷의 목소리 

6ㆍ13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7일로 꼭 37일 남았다. 예전엔 이즈음이면 여의도는 물론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술자리에서도 선거가 화두였다. 그런데 이번엔 도통 그렇지가 않다. ‘선수’들이 모여 있는 여의도에서도 “선거가 있긴 한 건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다.

일차적으로는 외교안보이슈가 워낙 뜨겁기 때문이다. 4ㆍ27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둘러싼 미증유의 분위기가 생겼다. 대북확성기 철거, 국방ㆍ통일ㆍ외교 장관의 서해 북방한계선 방문 등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나온다. 곧 있을 북ㆍ미 정상회담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날짜와 장소 등 하나하나가 이슈다.

이와는 별개로 이른바 ‘빅 샷’들의 영향력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대개 선거는 인물 중심으로 진행된다. 영향력이 큰 정치인들의 한 마디가 논쟁을 촉발하고 얼기설기 엮이면서 이슈를 확대 재생산하는 식이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 대표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커터칼 테러’를 당한 뒤 병원에서 “대전은요”라고 물었던 게 대표적이다.

지금 여권의 빅 샷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후보를 꼽을 수 있다. 각각 서울과 경기의 유력한 단체장 후보들이고, 비교적 넉넉한 지지율 격차로 경쟁자를 앞서고 있다. 아직 먼 얘기지만 '차기'를 논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지방선거 국면에선 파괴력 있는 한 방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좋은 의미든 그렇지 않든, 문재인 대통령의 그늘에 가려있는 모양새다.

박 시장은 말 그대로 조용한 행보다. 자유한국당 김문수,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가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소이부답(笑而不答) 한다.

어린이날인 5일 오전 서울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제18회 여성마라톤대회' 개회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린이날인 5일 오전 서울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제18회 여성마라톤대회' 개회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쟁점이 생길 만한 일 자체를 만들지 않는데, 이는 더불어민주당 경선 때도 유지했던 기조다. 당시 우상호 의원이 “시민단체 출신인 일부 ‘문고리 권력’이 전횡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박 시장은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의 한 핵심 측근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워낙 고공행진 중이라 여기에 기대는 게 전략이라면 전략”이라고 말했다. 한때 캠프 내에선 ‘박원순 표 공약’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지금 국면에선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괜한 논란만 만들 수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쪽으로 정리됐다고 한다.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 지지자 내부 단속에 골몰하고 있다. 당내 경선에서 ‘친문 핵심’인 전해철 의원을 여유있게 꺾었지만, 후폭풍이 거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예비후보(왼쪽)가 4일 오후 은수미 성남시장 예비후보 사무소를 방문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예비후보(왼쪽)가 4일 오후 은수미 성남시장 예비후보 사무소를 방문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을 비방했던 트위터 계정이 이 후보와 관련 있다는 거센 의혹 제기에 시달렸는데, 최근 일부 극렬 ‘문파’들은 아예 이 후보와 선을 그으라고 당 지도부를 압박하는 지경이다. 이에 대해 이 후보 측 관계자는 “다수의 지지는 변함없는데, 소수의 극렬 인사들이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선거대책위원회가 공식 출범하고 원팀 기조가 확실해지면 이런 분위기는 자연스레 잦아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도 정면돌파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최근엔 부인 김혜경씨와 은수미 후보 사무실 개소식을 찾아 “음해와 가짜뉴스가 심각하지만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 하면서 동시대 유력 정치인의 입지가 줄어든 경우는 과거에도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2년 차 때 벌어진 세월호 참사 이전까지 60%대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당시 여당에선 “누가 더 박심(朴心)에가까운가”가 가장 큰 경쟁력의 척도였다. 원내대표 선거든, 지방선거 경선에서든 이런 원칙은 거의 그대로 먹혔다.

야당의 유력 정치인들도 움츠러들긴 매한가지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패배 후 지역구(부산 사상) 의원으로만 조용히 지내다 2년 후에 당 대표 선거에 나서면서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재개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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