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복규의 의료와 세상

첨단 기술 있는데 관련 법규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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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교수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교수

최근 보도에 의하면 일본의 성체 자가줄기세포 치료 클리닉의 환자들 다수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심지어 국내의 모 병원이 운영하는 클리닉도 국내에서는 관련 제도가 불비하기 때문에 이러한 치료를 할 수 없어 일본에서 이러한 시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병원이나 의료계의 수준이 일본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시술을 승인하고 관리하는 제도가 일본에는 있고,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줄기세포치료뿐 아니라 돼지의 췌도세포와 각막을 인간에게 이식하는 이종이식 연구에 있어서도 국내 연구팀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원숭이에게 돼지의 췌도세포를 이식하여 1000일 가까이 정상 혈당을 유지한 기록은 세계에서 오로지 국내 연구팀만이 가지고 있으며 이런 연구는 현재 국내 환자 수 500만 명이 돌파한 당뇨병을 완치할 수 있는 길을 열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얻기까지 지난 십여년 간 국민의 세금 수백억 원이 투입되었는데 실제 사람에게 투여하여 그 효능과 안전성을 살피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관련 규정과 제도의 미흡이 발목을 잡고 있다. 우리 정부가 관련 법령과 규정을 아직 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이 관련 정부 부처에 그러한 제도를 만들어 달라고 애타게 호소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지만 정부와 국회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의료와 세상 5/7

의료와 세상 5/7

황우석 사태의 교훈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연구자나 의료진들은 줄기세포 치료나 이종이식처럼 예민한 이슈에 대해서는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넌다는 마음으로 국제적 기준과 정부의 통제에 따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커다란 낭패를 본다는 교훈을 뼈아프게 겪었기 때문이다. 과거와 같이 몰상식하거나 비윤리적인 연구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공은 정부에게 넘어갔는데 전례가 없는 세계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라고 해놓고, 막상 그 기술을 개발하여 실제로 적용해볼 때가 되자 선진국에 그러한 연구를 승인한 전례가 있느니 없느니를 따지고 있다면 이건 대체 무슨 모순이라는 말인가? 연구는 이미 세계 최첨단 수준을 넘어갔는데 이를 통제할 정부의 수준은 여전히 후발 주자의 상태를 못 벗어나 있다. 이래서야 국민 건강뿐 아니라 미래 의료산업의 경쟁력까지도 심히 우려될 수밖에 없다.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