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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보다 대담한 모험가 김정은, 승부사 트럼프 ‘빅딜’ 가능, 문제는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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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학 석좌가 지난 3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정효식 특파원]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학 석좌가 지난 3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정효식 특파원]

“김정은은 아버지(김정일)보다 훨씬 대담한 모험가다. 승부사인 트럼프와 포괄적 빅딜을 타결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북ㆍ미간 충돌은 포괄적 합의 이후에 이행과 검증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다.”

정 박(한국명 박정현) 브루킹스연구소 한국학 석좌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전망한 북·미 정상회담의 모습이다.
박 석좌는 '김정은 전문가'다.
컬럼비아대 박사, 뉴욕 헌터대 조교수를 거쳐 지난해 8월까지 약 9년간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대북 선임분석관을 지내며 대통령 일일 정보보고서를 작성했다.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프로파일링(성격 분석)은 그의 핵심 업무중 하나였다.

전 CIA 프로파일러 정박 박사와 미리 본 북미회담

박 석좌는 “김정은은 지난해 데니스 로드맨이 방북해 건넨 『거래의 기술』을 통해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에 대해 충분히 연구했을 것”이라며 “전통적 외교관과 달리 본능적 승부사인 트럼프 대통령도 회담 성공을 원하는 만큼 합의 가능성은 크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비핵화보다 평화협정으로 보다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까지 세 사람이 두 바퀴를 동시에 잘 맞춰 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김정은은 한·미동맹 공약 약화를, 중국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존재감 약화를 노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석좌와 인터뷰는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진행됐다. 아래는 주요 문답.

지난달 27일 남북정상회담은 CIA 프로파일러였던 당신에게 많은 분석 거리를제공했을 텐데 생중계로 본 김정은은 어떻게 보였나.

“2000, 2007년 회담과 3차 회담의 차이는 텔레비전과 소셜미디어로 생중계된 정상회담이란 것이다. 김정은이 생중계를 허용한 건 자신이 ‘정상인’임을 세계에 보이려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북측 판문각을 나오면서부터 문 대통령 곁에서 함께 군사분계선(MDL)을 건너는 모습을 연출한 건 매우 매력적이고 드라마틱했다. 그는 북한이란 이상한 나라의 만화 속 캐릭터가 아니었다. 유머 감각을 갖고 문 대통령을 존경심을 갖고 예우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했던 올바른 이야기, 즉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핵실험장을 폐쇄하겠다고 했다. 그는 '로켓맨'에서 ‘의미 있고 중요하며 명망 있는’ 정치가(statesman)이자 세계 지도자(world leader)로의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한 국가의 정상으로 동등하게 대우받고 싶은 욕망이 김정은이 핵 개발을 추구한 주요 동기였던 것과 같다. 회담 결과 김정은의 신뢰도가 치솟고 반전됐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미지를 진정성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의 대화 시도를 수용하면서도 그가 정말 진지한지는 회의하면서 시험해야 한다. 내 관점에선 현 단계에서 그는 트럼프와 동등한 지위로 만나는 수단이자 자신이 미국에 무릎을 꿇고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고 이 같은 외교적 극장을 활용하고 있다는 거다.”

남북회담 이후 김정은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변하지 않았다는 건가.  

“그렇다. 내 관점에서 그는 분명 외교에서 훨씬 많은 자신감을 보였다. 앞서 중국을 방문해서 이런 자신감을 보여줬고 이번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한 땅에서 문 대통령을 만나면서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이번에 그는 옳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주변 평가를 조종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줬는데, 그건 매우 의심스러운 행동이다.”

김정은은 ‘문 대통령을 백두산으로 초청하고 싶은데 북한의 교통이 불비해 불편하게 할 것 같다’며 문제를 인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내가 그걸 봤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도로를 관장하는 누군가 곤경에 처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웃음). 둘째 그는 내성적인 아버지와 달리 훨씬 더 카리스마 있고 투명하다는 점이다. 2012년 인공위성 발사가 실패했을 때 북한이 처음으로 실패 사실을 시인했다. 그때부터 김정은은 실패에 매우 많이 열려있다. 그는 자신이 개방적이고 투명하다는 걸 보여줬다. 이런 자신의 솔직함을 매력 공세의 하나로도 활용하는 한편 문 대통령에게 도로와 인프라 개발에 대한 경제협력을 시사하는 유능함도 보였다.”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학 석좌가 지난 3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정효식 특파원]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학 석좌가 지난 3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정효식 특파원]

이걸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고 경제개발을 우선하려는 신호로 볼 수 있지 않은가.

“그가 정말 경제개발을 원하는 건 맞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의 희망과는 달리 김정은이 경제건설에 보다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핵을 포기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김정은은 ‘핵 아니면 경제’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핵과 함께 경제’를 발전시키길 바란다. 그게 병진이다. 지난달 당 정치국 회의에서 더 이상 실험이 필요 없다는 게 핵을 포기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김정은은 핵무기가 경제개발을 보장한다고 믿고 있다.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자신들을 도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CIA 프로파일러 출신으로 보기에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과 성격이나 통치 스타일에 어떤 차이가 있나.  

“할아버지는 핵무기를 가지지 못했지만, 리더십으로 보면 할아버지에 가깝다. 성격도 김정일은 훨씬 소심하고 내성적이지만 김정은은 자신감이 있다. 아버지로부터 상당히 진전된 핵 프로그램을 물려받긴 했지만 6년 반의 통치 기간에 이뤄낸 성취는 주목할만하다. 특히 점점 더 큰 위험을 감수하며 경계를 넓혀 갔다. 지난해 대륙간탄도미사일뿐 아니라 잠수함 발사 등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했을 뿐 아니라, 공항에서 VX 신경가스로 이복형을 암살했다. 미국 소니 영화사를 상대로 사이버 공격까지 하는 등 새로운 분야의 도발까지 서슴지 않는 모험가다. 신세대로 기술에 능숙할 뿐 아니라 미사일시험 현장 사진에 등장하며 핵미사일 소유권도 강조한다. 나름의 방식의 정상외교에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 한마디로 아버지보다 통이 크고, 더 빠르게 행동하고, 더 유능하다. 공식적으로 부인을 공개 안 한 아버지와 달리 이설주를 공개하고 정상회담을 돕게 해 자신을 정상인으로 비치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전통적 인물과 거리가 멀고 충동적, 본능적인 승부사인데 첫 회담은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나.  

“나는 두 사람 모두 좋은 회담을 하길 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트럼프의 입에서 김정은이 매우 존경할 만하며 진지하다는 칭찬이 나온 것이나, 김정은이 평화를 얘기하고 핵 실험 중단을 선언하고 중국과 한국을 상대로 좋은 얘기를 한 게 그런 신호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분명히 합의해야 할 ‘빅 이슈’에 대해선 '기대의 차이'를 갖고 있다."

두 사람이 회담에서 기대 차를 좁힐 수 있을까. 김정은도 트럼프의 협상술을 연구해 똑같이 활용할 게 아닌가.  

“미 전직 프로농구 선수인 데니스 로드맨이 지난해 6월 북한에 갔을 때 김정은에게 전해주라며 『거래의 기술(Art of the Deal)』을 선물했다. 김정은이 그걸 읽고 회담을 준비하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북한인은 우리가 그들을 감시하는 만큼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다. 문 대통령도 김정은이 잘 준비돼 있었다고 했는데 한국 상황을 그만큼 잘 안다는 거다. 김정은은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읽고 측근들의 보고를 항상 받는다. 트럼프의 책엔 ‘당신이 언제나,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없다’는 충고도 포함돼 있다. 김정은에겐 이미 이행해야 할 약속들이 있고 핵 실험장 폐쇄를 검증받겠다고도 했는데 본인은 이를 큰 양보로 내세우며 이행할 거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비슷한 협상 스타일인데 중도에서 타협할 가능성은.

“트럼프와 김정은 두 사람 사이의 이슈가 있고,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문제 삼는 이슈가 있다. 북한이 비핵화를 이야기할 때는 자신들의 체제에 대한 모든 위협이 사라지는 미래의 비핵화를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 폼페이오 국무장관, 그리고 볼턴이 말한 것을 보면 그들은 6개월에서 12개월 이내 또는 매우 짧은 기간 내에 비핵화를 바라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제재가 해제하거나 양보를 하기 전에 북한이 비핵화를 완료하기를 원한다. 누가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순서의 문제가 있다."

김정은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우선 폐기 용의를 보일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현재로선 ICBM 폐기가 아니라 ICBM 시험발사를 하지 않겠다고 공표했지만, 김정은은 아마 포기할 의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 ICBM과 동등한 보상, 즉 미국의 행동을 조건부로 생각해야지 김정은과 북한이 60여년을 추구한 것을 어떤 보상도 없이 쉽게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ICBM 능력 확보를 위해 오랜 기간 노력했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말대로 회담이 중도에 결렬될 것으로 보나.

“나는 두 사람이 빅딜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들은 빅딜을 더 선호할 수도 있고, 포괄적 합의를 할지 모른다. 하지만 2005년 9ㆍ19 공동성명도 한반도 평화체제와 북미 관계 정상화, 비핵화 및 대북 에너지 지원 등 포괄적 합의, 빅딜이었다. 이번엔 다른 브랜드 이름이 붙겠지만 중요한 건 회담 후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가 문제다. 최악의 경우 회담이 성과 없이 결렬되면 트럼프가 예고한 대로 아주 거친 2단계가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협상 타결을 원한다는 신호들이 많기 때문에 회담은 아마 괜찮을 거다. 미국인 인질 3명의 사전 석방 이야기도 나오는 건 김정은도 트럼프를 기분 좋게 만들기를 원한다는 거다. 어느 정도 즐거운 회담을 할 계기는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비핵화의 구체적 조치와 관련된 내용이 합의에 포함될 수도 있을텐데, 가령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가능성은.

“한국 정부 관리가 익명으로 풍계리 핵 실험장 폐쇄를 국제 사찰관에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시험장 이외의 다른 시험장이 있다고 확신한다. 이것이 검증의 문제점이다. 현장에 사찰관들이 복귀할 경우 반드시 강제적 사찰과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분쟁은 나중에 실제로 강제적 검증, 그리고 누가, 무엇을 이행했는지 이야기할 때 발생한다. 당장 8월 을지훈련과 전략자산 전개할지 등 모든 종류의 문제들이 돌출할 여지가 있다.”

두 사람이 평화협정 논의에서 주한미군 문제가 어떻게 다뤄질 것으로 보나.

“문재인 정부는 평화협정과 비핵화가 함께 가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트럼프와 김정은 그리고 문재인 세 사람이 두 바퀴를 동시에 잘 맞춰 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비핵화보다 평화협정을 향해 보다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평화협정 체결 후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것이라고 한 건 분명히 동맹에 좋은 일이지만, 트럼프는 동맹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의 부담이며 공정한 몫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김정은으로선 미국의 한·미동맹 공약을 약화할 기회로 볼 수 있고, 중국도 한반도에서 미국의 입지와 존재감을 약화하거나 완화할 계기로 환영할 것이며 평화협정 체결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고 할 것이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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