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폄훼 논란’에 휩싸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북·미 정상회담 때까지 발언 수위를 조정하기로 했다. 홍 대표는 4일 당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단 우리 당은 남북관계 진전 현황을 지켜보겠다”며 “향후 남북관계와 북미 회담 진행상황을 주시한 뒤 종합적으로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고 장제원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지난달 27일 ‘판문점 선언’ 직후부터 “남북 위장평화쇼”, “세번 속으면 공범” 등의 강경 발언을 이어오던 홍 대표가 당 안팎의 반발 기류에 한발 물러선 것이다. 하지만 홍 대표는 4일 오후 충북 필승 결의대회에서도 “남북관계 가지고 위장평화쇼로 선거를 치르려고 하는 것 그거 나중에 허구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소 들쭉날쭉한 행보지만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보다는 민생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는 등 전날에 비해 톤다운하려는 기색이었다.
김성태 원내대표도 지난 3일 “남북정상회담의 문제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표현 방식에 일부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겠다”며 “홍 대표의 이미지 개선으로 국민에게 다가가겠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달 22일 원내대표 취임100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우리 준표가 달라졌어요’ 프로젝트를 통해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제1야당이 되겠다”고 밝혔지만 홍 대표가 "탁현민이나 하는 짓"이라고 일축하면서 실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한달 여 앞두고 당 지도부와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엇박자를 내는 모습이 부각되자 다시 수습에 나선 것이다. 당 관계자는 “홍 대표의 메시지가 내용은 괜찮은데 방식이 좀 서툴렀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특히 남북화해무드를 이용해 지방선거 공약을 내건 후보들은 홍 대표의 발언이 득표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재선에 도전하는 유정복 인천시장은 지난달 30일 “홍 대표와 당 지도부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자기정치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성효 대전시장 후보는 지난 1일 지역 토론회에서 “홍 대표의 발언에 대해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있다. 사실 어떤 지역에서는 ‘이번 선거 때, 홍 대표 좀 오지 말게 해달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태호 경남지사 후보도 ‘판문점 선언’을 높이 평가하는 등 당 지도부와 거리를 두며 ‘나홀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기초단체장 중에선 공재광 평택시장 후보가 “홍 대표는 사퇴하고 백의종군하라”고 공개 비판했다.
지난 3일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진행된 ‘2018 공천자 연수’에서도 홍 대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의 한 기초단체장 후보는 “홍 대표가 표를 다 깎아먹고있다. 이런 얘기를 하는 지방선거 후보들이 수두룩하다”며 “홍 대표는 선거 때 지원유세도 오지말고 가만히 있어주는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영남권의 한 광역의원 후보도 “홍 대표의 강경 발언에 대한 지역 민심이 너무 안좋다”며 “당 지지율 등 여러가지를 고려했을 때 6대4 정도로 우리가 우세하다고 보는데, 홍 대표가 계속 이런 식이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편 이효선 광명시장 후보는 “홍 대표가 하는 말이 내용은 좋은데 포장이 세련되지 못한 것은 맞다”며 “그래도 당 대표인데 후보들이 보조를 맞춰줘야 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4일 ‘일자리ㆍ설자리ㆍ살자리 선거대책위원회’를 공식 발족했다. 공동 선대위원장은 홍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해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제), 이용구 전 중앙대 총장(교육), 황선혜 전 숙명여대 총장(여성), 김인호 미당장학회 대표(청년)가 맡는다.
장 수석대변인은 “황교안 전 총리를 선대위본부장으로 모시려 했으나 본인이 극구 사양했으며, 이완구 전 총리는 백의종군하여 전국을 누비며 후보들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