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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시각각] 위대한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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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호 34면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해마다 한 차례 미국과 중국은 ‘인권 전쟁’을 벌인다. 미국이 ‘국가별 인권 사례 보고서’를 내놓으며 중국 인권 상황을 지적하면, 며칠 뒤 중국이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 인권 기록’을 발표한다. 올해도 그랬다. 미국이 지난달 20일에 보고서를 공개했고, 중국이 4일 뒤에 반격했다. 미국의 중국 비판 포인트는 반정부 인사 감금,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이뤄지는 사형, 언론·집회·결사·종교 자유 제한, 낙태 강요 등이다. 이에 맞서 중국은 미국의 총기 범죄, 인종 차별, 빈부 격차를 부각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 온 자유주의 #그 가치를 후세에 제대로 전수해야

중국 외교관들은 인권 문제가 거론되면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병들어도 치료를 못 받고 숨지는 사람이 허다한 미국보다는 우리가 인권 보장 측면에서 우월하다”고 말한다. 올해 중국 측 보고서에는 미국에 약 55만 명의 노숙자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얼핏 보면 중국 주장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중국의 소수민족 차별이나 빈부 격차 실태를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믿기가 어렵다. 중국 언론이나 사회단체는 자국의 인권 실태를 알리지 않는다.

중국도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한다. 하지만 갑자기 유력 정치인이 사라지고 감금 상태라는 소문이 파다해도 한 줄의 보도도 나오지 않는다. 중국 정부가 감추고 싶은 일은 인터넷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시민의 자율성,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기 일쑤다. 미국이 완벽한 인권 국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나라 국민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고, 무엇이 문제인지는 안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가 중국을 비롯한 ‘나름의’ 민주주의 국가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자유민주적’ 가치에 나라의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수식어 없는 그냥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차이를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행사 주체가 국민이라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이 선택의 권리와 책임의 의무를 갖고 미래를 개척하며 자아실현을 추구하도록 하는 사상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이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다.”

미국 정치철학자 존 롤즈(1921∼2002)는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자유주의 기원을 16·17세기 종교개혁과 그로부터 파생된 종교적 관용성에서 찾았다. 신념이 다르다고 죽이거나 잡아 가두지 않는, ‘교조적 폭력’으로부터의 해방이 근본정신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이 맞는다면 자유주의는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보다 200년 이상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역사 교과서 제작기준(시안)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사라지고 ‘민주주의’만 남은 일 때문에 논란이 분분한데, 해당 문구는 이렇게 돼 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 과정을 이해한다(중학교용).’ ‘6월 민주항쟁 이후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지고(…)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 대해 파악한다(고교용).’ 이를 그대로 따르면 국가 권력구조와 선거제도에 집중해 집필해야 한다.

만약 이를 ‘자유민주주의 발전 과정을 이해한다’로 바꾸면 정치적 경쟁자 탄압, 국민의 기본권 억압, 사상의 자유 제한, 고문치사와 시민 학살, 언론사 통폐합과 보도 통제 등의 반(反) 자유주의적 흑역사와 그것을 바로잡아 온 시민의 ‘위대한 여정’을 교과서에 담을 수 있다. 경제 발전이 그러한 진화의 물적 토대가 됐다는 내용도 포함할 수 있다.

학교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정보기관의 여론 조작, 정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대통령 권력 남용이 왜, 얼마나 나쁜 것인지 아는 사람이 된다. 또 타자의 인격을 무시하는 ‘갑질’과 비방 댓글의 위험성을 아는 시민이 된다. 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그러니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여, 교과서에서 ‘자유’를 지우지 말라.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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