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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영기의 시시각각

워싱턴의 한·미·북 3각 동맹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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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요즘처럼 ‘미국’ ‘한·미’란 단어가 푸대접받는 시대도 드물 것이다. 정부와 청와대, 더불어민주당 등 집권세력엔 ‘반미 정권’이란 소리를 들어도 딱히 반박하기 쉽지 않은 운동권 정서가 널리 퍼져 있다. 반미를 그 자체로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자유 대한민국의 탄생과 성장에서 젖줄을 대준 나라는 미국이고 그 점에 대해 우리는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세계 어느 나라도 깔보지 못할 만큼 장성한 한국을 자기 식대로 끌고 갈 수 있으리라는 오만한 패권 심리가 미국에 있다면 반미로 제어하는 수밖에 없다.

“한반도 운명은 한국인이 결정” #문 대통령이라면 해낼 수 있어

반미를 할 때 균형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반미가 지나쳐 친중 일변도로 치닫거나, 멀쩡하게 작동하고 있는 한·미 동맹을 “깨져도 좋다”고 한다든가 “평화가 오는데 주한 미군이 정당하냐(문정인 대통령 특보)”는 식으로 워싱턴의 신경을 건드리는 건 어리석다. 이런 반미는 국가의 진로를 벼랑 끝으로 안내하는 ‘탈선 반미’에 해당한다. 도대체 한반도에서 남북한 군사 균형과 동아시아에서 미·중·일의 전략적 안정을 뿌리째 흔들어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필자는 “중국이 큰형, 북한이 작은형이 되어 동아시아 신패권질서를 만들면 거기에 한국이 가입해 시진핑 제국의 보호를 받겠다”는 것이 탈선 반미가 꿈꾸는 그림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필자는 한미클럽(회장 이강덕 KBS 기자)이 개설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지난 1주일을 워싱턴에서 보냈다. 백악관·국무부·의회와 각 싱크탱크의 의사결정자·전문가들에게 집중한 질문은 ‘북한의 핵무기 폐기’와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 문제였다. 핵무기와 관련, 트럼프와 김정은은 함께 만족할 만한 폐기 약속을 도출해 정치적인 성과로 활용하겠지만 폐기의 성실한 실천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가 주된 흐름이었다. 주한 미군과 관련, “한반도의 운명은 한국인이 결정하는 것” “트럼프의 미군 철수론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는 쿨한 반응이 많았다. 다만 문정인 특보의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군 주둔의 정당성이 없어진다”는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엔 미국 정부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바로 한국 정부한테 공식 입장인지 아닌지 항의 조로 물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문 특보를 공개 경고한 배경이다.

프로그램을 수행하면서 조지타운대학에서 한반도 핵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김주은(34)씨가 큰 통찰을 줬다. 젊고 천재적인 이 여성 학자는 문재인·트럼프·김정은의 연쇄 정상회담에서 한국·미국·북한이 신3각 동맹을 구축하자는 대담한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3각 동맹이 맺어지면 북한은 체제 보장, 그 이상의 것을 얻기 때문에 영원히 핵무기 폐기를 실천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은 동아시아 지정학적 경쟁에서 중국을 결정적으로 누를 수 있는 기회이기에 북한을 끌어들이는 데 적극적일 것이다. 한국은 동맹이 확대·강화되고 미군 철수의 염려를 털어 내면서(보수 세력 환영) 북한과는 경제 교류 이상의 민족적 일체성을 깊이 할 수 있다(진보 세력 환영). 이념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 통합으로 가는 최적의 환경이다.

한·미·북에 두루 좋은 3각 동맹으로 중국과 일본은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이는 기왕의 북·중 동맹과 미·일 동맹이 맡아 달래야 한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역사에도, 지도에도 없는 길을 걸어 왔다. 동아시아 신3각 동맹 구상을 다듬어 22일 있을 한·미 정상회담에 내놓으면 또 하나의 길이 열릴 것이다. 김주은의 친미·친북 구상이 탈선 반미 세력의 친중 일변도보다 창의적이지 않은가. <워싱턴에서>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