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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문화

자청비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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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때부터 자청비의 고행이 시작된다. 문도령을 찾아나선 길에서 자신을 겁탈하려 한 하인을 죽였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고, 고생하며 저승을 찾아가 죽은 하인을 살려내고, 그것 때문에 다시 재수 없다고 쫓겨나고, 어느 집에 기숙하다가 몇 년 만에 찾아온 문도령이 야속해 바늘로 손가락을 찔렀다고 해 낭군도 잃고 집에서도 쫓겨나고, 온갖 어려움을 이기고 하늘나라를 찾아가 문도령과 재회하고, 날 선 작두 위를 피 흘리며 걸었다. 그녀는 그 수많은 고행을 감내하고서야 사랑을 얻었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진취적인 정신, 뭇 남성들을 능가하는 지혜와 기지, 불행을 행복으로 바꾼 열정적인 사랑, 고난을 극복하는 불굴의 의지-이 모든 것을 갖춘 여성이 자청비였다. 나는 어느 나라 신화에서도 이처럼 멋진 여성을 만나지 못했다. 질투에 눈이 먼 그리스 신화의 헤라, 남편을 저주하는 일본 신화의 이자나미, 멋진 남자에게 선택받기만을 바라는 중국 신화의 달가, 남편을 버리고 악마와 결탁한 유대 신화의 릴리트-이 모든 여성을 어찌 그녀와 비교할 수 있으랴.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그녀를 둘러싼 저 무서운 세상이다.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난은, 여성이기에 걸머져야 했던 고난이었다. 자청비가 여자가 된 것은 부모가 절에 시주한 곡식이(다시 말해 부모의 정성이) 한 근 모자라서였다. 자신을 능욕하려는 하인을 죽였다고 해 쫓겨나고, 그를 다시 살려냈다고 또 쫓겨나고, 무정한 정인의 손끝을 찔렀다고 소박맞고 머물던 집에서 또 쫓겨난다. 그녀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서도 무서운 시험을 거쳐야 했다. 그녀가 날 선 칼날 앞에서 머뭇대자 남편이 울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자청비야, 오늘 죽더라도 문씨 가문의 귀신이 될 것이니 섭섭히 여기지 마라." 떠난 여자보다 원귀(寃鬼)가 낫다는 생각이다. 세상의 논리는 이 아름다운 주인공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무심하고도 표독스럽게 자신의 원리를 관철해나간다. 그녀의 고난이 문제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이겨냈지만, 세상은 여전히 무섭고 잔인하다.

국회의원 한 사람의 성추행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도무지 용납해선 안 될 일이 일어났지만, 당사자로서는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단 한번의 잘못으로 평생 걸려 쌓아온 명예와 권력을 모두 잃었으니 말이다. "음식점 여주인인 줄 알았다"는 변명 때문에 또 한번 여론이 들끓었지만, 당사자가 생각한 것은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널린 룸살롱들, 늘 접대받던 그 술자리로 착각한 게 아니었을까. 그곳을 '음식점'이라고 에둘러 말한 게 아니었을까. 무서운 것은 그렇게 이름 모르는 여자들을 끼고 흥청망청 살아도 되는 세상이 있다는 사실이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누구나 만져보고 싶다"던 다른 의원의 어이없는 옹호 속에 든 그 세상 말이다. 의원 한 사람의 고난이 문제가 아니다. 그가 자신이 자초한 고난을 이겨낼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렇게 굴러간다. 무심하고도 잔인하게, 수많은 자청비를 옆자리에 앉혀 놓고 주물러 대면서.

권혁웅 시인·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