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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혀보다 눈과 코로 먹는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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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호 31면

책 속으로 

왜 맛있을까

왜 맛있을까

왜 맛있을까
찰스 스펜스 지음
윤신영 옮김, 어크로스

옥스퍼드대 통합감각연구소장 #“미각은 시각·청각·촉각의 총합” #뇌과학 임상실험 결과로 입증 #“음식 이름·모양도 영향 미쳐” #맛있게 먹는 법 10가지 요령도 #“음료는 빨대로 마시지 말아야”

뉴욕타임스는 최근, 올 초 재개장한 덴마크 레스토랑 ‘뉴 노마’ 탐방 기사를 큼지막하게 실었다. 기사에 따르면 식당은 온실과 콘크리트 벙커 같은 구조물로 이뤄져 있다. 식당 간판, 메뉴판도 따로 없다. 도착하면 14년간 이 식당에서 접시를 닦다 지난해 공동소유 파트너로 ‘벼락출세’해 전 세계 미식가들을 놀라게 한 아프리카 감비아 출신 알리 송코가 반긴다. 달팽이, 개미까지 식재료에 포함된 한 끼 식사 가격은 와인 페어링(음식에 맞는 와인 제공) 비를 합치면 자그마치 541달러(약 58만원). 기사는 식당이 하나의 미학적 기획으로, 음식에 관한 기존 가치체계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평가로 끝을 맺는다.

상식적인 식재료가 변하고 있다는 것, 더 이상 사람들이 맛만으로 음식을 먹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아름다워야 한다. 특히 뉴 노마에서는.

상위 몇 %에게만 시식의 기회가 주어지는(일단 비행기 타고 덴마크에 가야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극단적 사례이겠으나, 글로벌 음식문화의 변하는 트렌드, 그런 현상 밑에 깔려 있는 먹는 일과 관계된 근본적인 궁금증에 답변을 시도한 책이다. 궁금증은 이런 것들이다. 우리는 어떻게 음식 맛을 지각하나. 구체적으로 어떨 때 음식이 맛있다고 느끼나. 그러니까, 왜 맛있을까.

줄줄 흘러내리는 계란 노른자를 찍어먹는 토스트. 사람들은 정적인 음식보다 ‘움직이는 음식’에 더 끌린다. [사진 어크로스]

줄줄 흘러내리는 계란 노른자를 찍어먹는 토스트. 사람들은 정적인 음식보다 ‘움직이는 음식’에 더 끌린다. [사진 어크로스]

결론을 당겨 말하면 단순히 음식 맛만으로는 까다로운 요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게 책의 주장이다. 왜? 음식은 혀로만 맛보는 게 아니니까! 그럼 어떻게? 짐작하시겠지만 코로, 눈으로, 소리로, 심지어 촉각으로 음식을 맛본다. 촉각 조작으로 음식을 더 맛있다고 느끼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 분야, 가능한 한 모든 인간 감각을 자극해 미식 경험을 향상시키는 연구 분야의 선구자다. 옥스퍼드대 통합감각연구소 소장으로 책의 원제인 ‘개스토로피직스(Gastrophysics)’라는 용어를 창안했다. 개스트로노미(Gastronomy·미식학)와 사이코피직스(Psychophysics, 물리적 자극과 감각 인식의 관계를 연구)를 결합한 말로, ‘썰’이 아닌 과학으로, 숱한 임상실험으로, 내세운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하는, 저자를 비조(鼻祖)로 하는 분과학문이다. 옥스퍼드 울타리를 벗어나 얼마나 다른 대학에 퍼질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상업적으로는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P&G, 네슬레, 영국항공 등 먹고 마시는 일에 관계된 유수의 기업들이 저자를 1순위 연구 파트너로 꼽고 있다고 한다. 매출 신장의 묘수를 배울 수도 있을 테니까.

책에는 혀를 통하지 않고도 음식이 맛있다고 느끼는 사례들이 그야말로 깨알 같이 쟁여져 있다.

음식의 형태와 맛 사이의 상관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그림 실험. [사진 어크로스]

음식의 형태와 맛 사이의 상관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그림 실험. [사진 어크로스]

2번 사진의 그림 실험은 그런 현상의 실증적, 과학적 근거 노릇을 한다. 밑도 끝도 없이 두 개의 도형을 제시한 뒤 ‘보우바’와 ‘키키’라는 이름이 각각 어떤 도형에 어울리는지, 그다음에는 다크 초콜릿, 강한 맛의 체더 치즈, 탄산수, 이렇게 세 종류의 음식조합과 밀크 초콜릿, 부드러운 브리 치즈, 그냥 생수, 이런 두 번째 음식 조합이 각각 어떤 도형에 어울리는지 차례로 물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부드러운 모양의 왼쪽 도형에 보우바를, 역시 부드러운 이미지의 음식 조합을 연관지었다고 한다. 당신은? 마찬가지라면 음식의 이름, 모양이 맛과 관련 있다는 얘기다. 맛뿐만 아니라 ‘모냥’도 따지는 까탈스러움이 뉴 노마의 호사취미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리고 그런 습성의 바탕에는 ‘통합감각’이라는 뇌과학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과거 과학자들은 음식의 시각 정보는 뇌의 시각 영역에서, 청각 정보는 뇌의 청각 영역에서 별도로 처리된다고 믿었으나 개스트로피직스의 시각에서는 감각 정보의 내용을 바꾸면 음식에 대한 느낌을 바꿀 수 있다. 처리과정이 통합돼 있어서다.

저자는 책 말미에 건강하면서도 맛있게 먹는 10가지 요령을 소개했다. ‘적게 먹어라’ 같은 식상한 항목도 있다. 5번째 항목, ‘더 많은 감각을 동원하라’는 의미심장하다. 이 항목에 따르면 음료는 빨대로 마시지 않는 게 좋다. 음료 맛은 냄새에 크게 좌우되는데 빨대는 냄새를 원천차단한다. 식사 중 얼음물을 마시는 것도 좋지 않다. 혀의 맛돌기(미뢰)를 둔감하게 해 음식이 덜 맛있다.

송코의 벼락 승진 비밀도 알 것 같다. 뉴 노마는 이민자를 특별 대우하는 특별한 식당이다. 여기서 밥 먹는 것 자체가 착한 일이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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