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끼리 비난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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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의 대북정책, 통일노력은 「개방」과 「진보」의 방향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 그동안 구상하고 논의되던 남북관계방안들을 하나의 정책으로 묶어「7·7선언」으로 내놓은 정부는 그 후속 조치로 전후방의 대북비방방송을 19일부터 중지키로 했다. 북한에 대한 호칭도 필요할 때는 그들의 헌법에 명시된 국호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라고 부르는 방향으로 검토중이라 한다.
비난방송의 중지는 72년의 「7·4공동성명」후 남북합의에 따라 실현됐다가 1년만에 중단된 것을 다시 환원한 것이다.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향해 남북의 공존공영을 추구한다는 「7·7선언」의 정신상당연한 조치다. 같은 겨레끼리 지혜를 동원하고 진실을 왜곡·과장해가며 서로 중상·비방한다는 것은 대외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북한의 국호사용도 시대의 흐름상 불가피한 일로 발전돼가고 있다. 「7·7선언」이 명시한 대로 남북외교관의 접촉이 허용되고 남북관계의 발전에 따라 공식 문서를 교환하게 되면 상호의 국호사용이 전제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최광수외무장관도 유엔연설에서 DPRK호칭을 사용한바 있다. 그 동안 서울과 평양사이에 주고 받은 대화관계 서신에서도 서로「대한민국」과「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호칭을 써왔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남북의 두 정부가 서로 상대방에 대한 정부승인, 국가승인까지 이르는가 하는 문제다. 분단국가에서 그것은 미묘하고도 중요한 문제다.
독일은 「1민족 2국가」원칙에 따라 동·서독이 서로 승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피한 잠정조치다. 따라서 상대방을 다른 나라와는 구별하여 대응하고 있다. 그 것은 서독의 내 독성이라는 관서이름이나 경제협력과 교역형식의 국내화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중국은 「1국가 2체제」 원칙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대륙과 대만의 체제 차이는 인정하여 공존할 수 있으나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치는 않고 있다. 중공이 대만이나 홍콩, 마카오를 중국의 일부 지방으로 만 고집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는 「1민족 2체제」원칙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단일민족인 우리가 남북의 체제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초월하여 공존한다는 입장이다. 국가차원의 개념규정은 보류 상태다.
그러나 북한은 「1민족 1국가」를 고집한다. 남북관계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북한의 개념으로는 한민족의 고유영토인 한반도에 하나의 정부, 하나의 국가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북한은 남북한 교차승인이나 유엔 동시가입을 거부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1민족 2체제」원칙위에 서 있지만 상대방 호칭을 사용하고 북한이 한반도 북반부를 사실상 유효하게 지배하는 정치적 실체로 인정한다면 국제법상「명시적인 승인은 못돼도 사실상 또는 묵시적인 승인은 되는 셈이다. 그나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단일 민족공동체를 지향하는 입장에서 그같은 기존개념에 묶여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
정부는 비방이나 중상은 중지하나 체제비판은 강화할 방침이다. 이로써 「7· 7선언」 이후의 남북관계는 투쟁관계에서 경쟁관계로, 중상·비방에서 토론·비판의 상태로 발전하게 됐다.
정부 방침이 민족공동체의 단일화와 번영에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북한의 긍정적인 호응이 있어야한다. 그러나 북한은 「7· 7선언」을 「묵은 서류의 재판」이라 비난하고 남북교차승인제의를 「분단을 영구화하는 분리주의」 라고 규탄하고 나왔다. 지금까지 북한이 견지해온 행동체계나 선전논리상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들에게도 변화가 따를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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