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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과 소국, 분별 못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9일로 회기를 마친 임시국회의 지난30일간을 돌이켜보면 앞으로의 정국에 대해 낙관보다는 우려를 더 하게 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13대국회의 사실상의 첫 국회였던 이번 임시국회는 여소야대라는 헌정초유의 정계구조를 첫 시험가동하는 의미가 있었는데 원만한 가동을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점과 불안감을 보여 주었다.
원구성에 있어 상임위원장 감투배정을 둘러싼 구태적인 흥정, 특위명칭에 대한 소국적 명분다툼등에서 우리는 국회운영의 주역들인 원내 4당이 오늘의 시대상황적 요구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함을 보았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는 헌정최초의 불상사에서 보듯이 여당은 아직도 표만 확보되면 명분이 서든, 안서든 밀어 붙이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고 야당 역시 사안에 따라 대국과 소국을 혼동해 버릴 우려를 보여 주었다.
특히 회기말에 이르러 표대결을 거듭한 구인제문제에 있어 여야는 다 같이 정치력을 발휘하는데 실패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대화와 타협이 아니고는 무엇 한 가지 할 수 없는 4당구조에서 여야가 각기 주장의 관철만 고집하여 야당의 다수표와 대통령의 거부권의 충돌이라는 한계상황까지 몰고간 것은 진상조사를 통한 5공화국의 청산이라는 목표접근을 도리어 어렵게 한 것이다. 거부권이 행사되면 입법은 다시 지연됨으로써 실제 비리조사 착수는 언제 이뤄질지 답답한 노릇이다.
여야는 이번 국회를 통해 피차새로운 정치상황에 적응하는 방법을 모색해본 셈인데 30일간의 테스트로서는 아직 적응력을 얻은 것 같지 않다. 여당은「야대」국회의 대응방안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인 것 같고, 야당은 효율적인 3당 협력체제의 가동에 여전히 미숙하다. 정국운영의 틀이 아직도 자리가 잡히지 못함으로써 정국의 예측가능성과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여러가지 요인으로 말미암아 이번 국회는 뭔가 시원시원한 해결과 방향제시등을 기대했던 국민들에게 만족할만한 속도감을 느끼게 해주지 못한 셈이다.
그리고 현재의 정국상황이나 각 정당의 사정으로 보아 이런 문제점이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우리가 이번 국회의 운영이 하나의 시험대였다고 보면서 정국의 앞날을 우려하게 되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가령 앞으로 정계의 중심 쟁점이될 비리나 광주문제의 조사 같은 것이 순탄히 진행되기란 난망인데다 올림픽후에 가서는 더 많은 악재가 나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벌써부터 나돌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국회서는 과거에 비해 진전이라고 할만한 몇 가지 현상도 나타난게 사실이다.
우선 정부측의 국회답변 태도가 좀 나아진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게된다. 야당측은 여전히 답변이 불성실하다고 질타했지만 이번 정부측 답변에서는 과거라면 나오기 어려운 통일문제, 부실기업정리 내용등 비교적 알맹이 있는 사항이 있었다. 「야대」국회를 어려워하는 정부태도가 은연중 나타남으로써 과거처럼 내용 없이 넘어 가기는 어렵다는 것을 정부측도 실감했을 것이다.
또 국회발언에서 「성역」이 거의 사라진 것도 과거와 다른 점이다. 이제 국민의 관심사나 의원이 문제삼는 일은 거의 예외 없이 국회의 토론대상이 될 수 있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7·7선언에 대한 야당지지에서 볼 수 있듯이 통일문제에 대한 청와대사전협의와 초당적 자세도 대화정치의 진일보를 보여준 것이라 할만하다.
결국 첫술부터 배부를 수는 없다. 더구나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이고 각 정당이 이를 체질화하는 데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각 정당은 이번 임시국회의 첫 시험을 자체결산하면 서버릴 것과 발전시킬 것을 명확히 함으로써 정치권의 신뢰를 높여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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