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情 나누어 '우울한 추석' 달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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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노래하던 풍요의 상징 추석이 올해엔 근심으로 변했다. 극심한 불경기를 잊을 반짝 대목 경기를 은근히 바란 상인들도, 황금들판을 꿈꾸던 농부들도, 제수용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도 한숨만 내쉬고 있다.

추석이 예년보다 열흘쯤 일찍 찾아온 탓에 가을 옷을 장만하던 추석빔은 '없는 일'이 돼 버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잦은 비와 이상저온으로 농산물의 작황이 좋지 못해 제수용품은 대체로 지난해보다 50% 안팎으로 값이 껑충 뛰었다.

더욱이 이번 추석엔 날씨가 흐려 밝은 보름달조차 구경하기 어렵다니 이래저래 '우울한 추석'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러나 민족 최대의 명절을 마냥 우울하게 보낼 수는 없다. 이런 때일수록 소중한 것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이다. 친척 간에, 이웃 간에 진솔한 정 나누기를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해 8월 태풍 루사로 보금자리를 잃은 수재민 가운데 아직도 5.5평의 좁은 컨테이너에서 추석을 맞아야 하는 이들이 남아 있다. 무리를 지어 고향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부러움과 서러움 속에 지켜봐야 하는 시골의 소년소녀가장도 있다.

온 나라의 상점들이 모두 철시한 도회의 한 모퉁이에서 한민족의 대이동을 쓸쓸히 바라보는 외국인 근로노동자들도 있다. 이런 우리의 이웃에게 각박하지 않은 명절 인심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자. 따스한 인사와 관심 어린 한 마디, 한 접시의 음식이나 작은 선물은 비록 넉넉지 않더라도 훈훈한 정을 전하기에 족하다.

추석은 제각각 파편처럼 흩어져 살던 현대인의 생활을 '가(家)'의 일원으로 환원시켜주는 드문 기회다. 대가족 문화가 주는 안온함 속에서 각자 체면일랑 던져버리고 흉금을 털어놓아 위안과 격려 속에 새 희망과 의욕을 재충전하도록 하자. 설거지 등 집안일에 남성들이 스스로 앞장서는 것은 그 한 예가 될 수 있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고통과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 정 나누기로 '우울한 추석'을 날려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