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흑인들 "굿바이 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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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이 뉴욕을 떠나고 있다.

높은 생활비에 허덕이다 다른 도시를 찾아 떠나는 이들이 늘어 뉴욕의 흑인 인구가 남북전쟁 이래 처음으로 줄었다고 뉴욕 타임스가 3일 보도했다. 1863년 남북전쟁 당시 흑인들이 백인들의 집단 공격을 피해 뉴욕을 떠났을 때 이후로 지금까지 뉴욕에서 흑인 인구가 줄어든 적은 없었다.

신문은 "뉴욕을 떠난 많은 흑인의 상당수가 남부로 이주했다"며 "백인 대부분이 뉴욕에서 인근 도시로 이주한 것과 매우 대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잠정 집계된 인구 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2004년 뉴욕에 사는 흑인은 2000년에 비해 3만 명이 줄었다. 낮아진 출생률과 함께 뉴욕으로 유입된 흑인 이민자 수가 이전보다 약간 감소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물론 흑인들만 뉴욕을 떠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백인들은 더 많이 떠난다. 그러나 더 많이 들어온다. 뉴욕은 여전히 다른 도시에서 백인을 끌어들이는 '자석'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래서 백인 인구는 줄지 않았다. 백인은 또 뉴욕을 떠나더라도 절반가량이 뉴욕 인근의 교외로 이주한다. 또는 북동부 지역이나 은퇴 뒤 살기 좋은 도시를 찾아 미 전역의 도시로 흩어진다.

반면 뉴욕을 떠나는 흑인들은 집단 이주라도 하듯이 대부분 남부로 간다. 뉴욕 인근 뉴저지로 옮겨가기보다는 남부 플로리다로 옮겨가는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사우스캐롤라이나.조지아주도 인기 지역이다. 나머지는 흑인 인구 비율이 높은 캘리포니아.오하이오.일리노이.미시간주로 옮겨갔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인구 통계학 전문가 윌리엄 프레이 박사는 "뉴욕에서 백인은 뉴욕 인근으로 '이사하고', 흑인은 '철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흑인들이 뉴욕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집세와 물가 때문이다. 지난해 뉴욕 맨해튼에서 노스캐롤라이나로 이주한 흑인 재클린 다우델(39)은 "뉴욕에 살 때는 미래를 설계하기는커녕 겨우 입에 풀칠만 했는데도 번 돈을 다 써야 했다"며 "뉴욕을 떠나 삶의 질을 높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대학 교육을 제대로 받은 고소득 흑인들은 뉴욕에 남는다. 남부로 이주한 흑인들 중에는 좋은 직업이 있으면서도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난 사람도 있지만 실제 이주민의 상당수는 저학력에 저임금, 그리고 나이 많은 사람이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 사회에서 소수 인종.종족이 건축업이나 소매업, 서비스 직종의 일거리를 찾아 남부나 서부로 옮기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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