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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안과 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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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의 일상은 너무 소란하고 난삽하다. 어디에 가든 미디어에 노출돼 뉴스.음악.광고 등에 시달린다. 휴대전화는 끊임없이 울려 대고, 소음 속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는 자꾸만 커진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기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허겁지겁 정보를 발신한다. 그러나 그러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 불필요한 소음의 증가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은 더욱 어려워진다. 단절과 고립이 두려워 우리는 맹목적으로 타인에게 접속하고 판에 박힌 교신에 더욱 골몰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 결과 도발적이거나 공허한 언어의 파편들을 붙들고 표류하기 일쑤다. 그러는 동안 언표(言表)되지 않은 것을 듣는 귀가 점점 멀어져 간다. 말을 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을 잊어버린다. 침묵이란 단순히 언어의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화되기 이전의 의미 원천, 또는 언어 너머의 세계로 다가가는 마음의 운동이다. 이따금 입을 닫고 침묵의 심오한 힘을 클릭해보자. 장황한 설교보다 조용한 경청이 훨씬 설득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확인한다. 시험 보고 귀가한 아이에게 '시험 어떻게 보았니'라고 다그치는 대신 말없이 껴안아 주는 부모가 실제로는 더 '무섭다'.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고백보다 연인이 탄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아주는 눈길이 훨씬 감동적이다. 지난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회에서 일본의 이치로 선수는 '30년' 발언으로 공연한 빈축을 샀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고, 한국 선수들은 말이 아닌 경기의 결과로 멋지게 답을 해주었다.

다시금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다. 지방 선거 출마자들은 저마다 수많은 공약의 보따리들을 풀어놓을 것이다. 후보들이 쏟아내는 담론의 성찬에 현혹되지 않고 참 일꾼을 어떻게 분간할 것인가. 빈 수레들의 요란한 소음 속에서 묵묵히 자치의 터전을 일궈갈 인재를 무엇으로 식별할 것인가. 말해지지 않은 것, 말과 말 사이의 행간(行間)으로 전달되는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 선거철에 잠시 언어의 홍수를 이루다가 금방 대화의 불모지가 되어버리는 지역사회, 장황한 수사(修辭) 속에 만성적 소통 부전(不全)을 앓는 정치 영역에서 의미를 재생하는 말길이 열려야 한다. 행정과 시민, 그리고 주민과 주민 사이에 이심전심의 통로가 돼 공공의 선을 도모하면서 지역의 미래상을 그려가는 언어, 그것은 침묵보다 무겁고 빛난다. 현란하게 요동치는 정보의 바다보다 넓고 깊다.

김찬호 한양대 교수·문화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