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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보려 셋째 넷째 낳는 건 옛말 “딸이면 더 좋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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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의료인은 태아 성(性)을 감별하기 위해 진찰 또는 검사를 하지 못하게 돼 있다. 성 감별을 도와서도 안 된다. 또 임신 32주가 안 된 태아의 성을 알려줄 수 없게 돼 있다.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형에다 의사면허 정지 3개월 처분을 받는다.

남아 선호 사라져 … 성비 정상 범위 #“4, 5년 전부터 성 감별 요구 없어” #노후에 아들이 잘 할거란 기대 낮고 #딸이 어머니와 정서적 교감 잘해

2008~2017년 이 조항을 위반해 의사면허가 정지된 사람은 1명(2014년)이다. 앞으로 이 조항이 사문화될지 모른다. 지난해 셋째 아이 이상의 여아 100명당 남아는 106.5명으로, 4년째 정상권을 유지하면서 남아 선호 사상이 거의 사라졌다. 종전에는 아들을 낳기 위해 성을 미리 알고 싶어 했고 의료진이 더러 임신 32주 이전에 성 감별을 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정상 남녀 성비는 103~107명이다. 40, 50대까지 남자가 많이 사망하기 때문에 3~7명 더 많은 걸 정상으로 본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셋째 아이 이상의 성비는 2014년 106.7명으로 떨어진 뒤 그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2016년 107.4명이지만 정상권과 다름 없다고 본다. 이지연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2014년 이후 남녀 성비가 정상에 접어들면서 남아 선호 사상이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 이 추세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하남시 정모(42)씨는 10살짜리 딸, 7살 아들을 키우다 셋째는 딸(2)을 낳았다. 정씨는 “셋째 임신 계획을 세울 때 성별이 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 했다. 딸이면 딸인대로, 아들이면 아들인대로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일부에선 여아 선호 현상이 나타난다. 경기도 안양시 서지선(39)씨는 10살, 6살 아들 밑에 3살 딸이 있다. 둘째는 딸을 원했는데 뜻대로 안 됐고 셋째에서 성공했다. 낳고 보니 키우는 데는 형제가 장점이 있었다. 서씨는 “셋째는 딸을 더 원했다. 아들 있으니 딸 낳고 싶은 욕심 생겼다”고 말한다.

남아 선호 사상은 1980년대로 올라간다. 이지연 과장은 “83년 합계출산율(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수)이 2.1명으로 떨어지면서 원하는 성을 낳으려는 풍조가 생겼고, 90년대 초반에 최고조에 달했다”고 말한다. ‘한국인구학’ 제21권에 실린 논문(98년)에 따르면 80~84년 아들을 보기 위해 둘째~넷째 아이를 낳은 집이 13%였다고 한다.

작년 신생아(35만 7700명) 성비는 106.2명이다. 2007년부터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난임센터장은 “종전에는 초기 임신부가 딸 태몽을 꿨다고 아이를 지워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4, 5년 전부터는 태아 성 감별을 요구하는 부모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는 남아선호 사상이 남아 있다. 2016년 기준으로 제주(120.9명)가 가장 높고, 경북(117.6명), 부산(111.1명), 대구(110.5명), 경남(110.2명) 등의 순이다. 영남권이 높은 편이다. 이지연 과장은 “영남권도 종전에 비하면 크게 낮아졌고 정상권에 근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노후에 아들이 더 잘 할 것이라는 기대치가 낮아진데다 딸이 어머니와 정서적으로 교감을 더 잘 해 효용이 크다고 보기 때문에 남아를 선호하지 않는다”며 “아들이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전통적 규범이 엷어진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2010년 정부가 낙태 단속을 강화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아들을 낳기 위해 낙태라는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사라졌다. 이상림 박사 연구에 따르면 노부모와 가장 많이 접촉하는 자녀는 2006년 장남에서 2016년에는 장녀로 바뀌었다. 최안나 센터장은 “낙태 절차가 투명해지기 전까지는 성 감별을 금지하는 법률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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