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복지 안전망 촘촘히 짜 '증평 모녀' 비극 막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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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보건복지부는 올해 업무계획을 통해 모든 국민을 끌어안는 ‘포용적 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빈곤 사전예방 통합체계와 찾아가는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가동해 위기 가구를 선제 지원하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그러나 충북 증평의 한 민간 임대아파트에서 발생한 ‘두 모녀’ 사건을 통해 말만 거창했다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40대 엄마와 세 살배기 딸이 두 달 전 숨진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9월 남편이 자살하고, 친정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자 정신적·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아파트 우편함에 카드 연체료와 수도·전기료 고지서가 수북이 쌓였지만 관리사무소와 이웃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모녀의 생활고는 극심했다. 부채(1억5000만원)가 아파트 임대보증금보다 2100만원 더 많았다. 차를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산과 부채를 면밀히 따져봐야겠지만 차상위 또는 차차 상위 빈곤층에 해당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찾아가는 서비스가 작동하지 않아 가정양육수당 10만원만 받았다. 4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각종 공적 자료 27가지를 활용해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장담했던 정부의 그물망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자살 유가족 관리에도 경종을 울렸다. 만일 군청이나 사회복지사가 모녀 상황을 살핀 뒤 손을 잡아줬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의학계에 따르면 자살 유가족의 극단적 선택 위험은 일반인의 8.3배, 우울증은 7배에 달한다.

정부는 올해 전체 예산의 34%인 144조7000억원을 복지 부문에 투입한다. 지금 같은 성긴 그물로는 포용적 국가도, 제2의 증평 모녀사건 예방도 힘들다. 이번 기회에 민간 임대아파트 관리비 연체자를 복지 그물망에 연계하는 등 사각지대 예방 시스템을 새로 짜야 한다. 자살예방법을 바꿔 유가족 관리를 의무화할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