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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피임은 완벽한 시기에 임신하기 위한 인생 계획의 일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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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여성 인생과 피임' 주제 한·미 전문가 대담

애니타 넬슨 교수(왼쪽) 미국 하버 UCLA 메디컬센터 산부인과 전문의, 미국 산부인과위원회 위원과 최두석 회장(오른쪽)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 대한피임·생식보건학회 회장 

애니타 넬슨 교수(왼쪽) 미국 하버 UCLA 메디컬센터 산부인과 전문의, 미국 산부인과위원회 위원과 최두석 회장(오른쪽)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 대한피임·생식보건학회 회장 

대한민국의 성(性)이 열리고 있다. TV 속 성 담론이 늘었고 청소년의 성 노출 시기도 빨라졌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학교의 피임 교육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미혼의 산부인과 방문에 대한 시선이 여전히 곱지만은 않다. ‘피임 실패’는 한 여성의 인생에 큰 정신적·육체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교육적·사회적 개선이 시급하다. 지난 3월 28일 국내외 피임·여성의학 권위자인 대한피임·생식보건학회 최두석 회장과 미국 UCLA 메디컬센터 산부인과 애니타 넬슨 교수가 만나 여성의 인생과 피임에 대해 논했다.

애니타 넬슨 교수 #"효과적 피임법 속속 개발 #상황에 적합한 방법 선택 #원하지 않는 임신 피해야" #최두석 회장 #"성관계 시작 연령 낮아져 #청소년 피임률 20~25% #올바른 성·피임교육 절실"

세계적인 피임 트렌드를 짚어본다면.
애니타 넬슨 교수(이하 넬슨) 세계적으로 피임을 실천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피임법도 다양해졌다. 최근엔 나팔관을 묶는 피임이 줄고 체내 삽입형 피임이 증가하는 추세다. 자궁에 삽입된 장치가 특정 호르몬을 서서히 방출시키거나 자궁 내에 약한 염증을 일으켜 임신을 막는 장기 피임법이다.

최두석 회장(이하 최) 한국에선 성 노출 연령이 크게 낮아졌다. 최근 질병관리본부 조사에 따르면 성관계 경험이 있는 국내 중·고등학생의 첫 성경험 연령이 평균 13.1세다. 대부분 즉흥적으로 관계를 가져 원치 않는 임신과 낙태로 이어지기 쉽다. 적절한 시기의 올바른 성교육이 절실한 때다.

각국의 청소년 성교육 현황은 어떤가.
넬슨 미국 청소년들은 학교의 성교육보다 온라인 정보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친구들끼리 잘못된 정보를 주고받기도 한다. 미국 내 600여 곳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가족계획클리닉(Planned Parenthood)을 방문해 상담 받기도 한다. 하지만 관계 후 임신 여부를 확인하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개선이 필요하다.

최 국내에서도 연간 10시간 이상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도록 돼 있지만 실제 교육 시간은 이보다 적다. 정보가 기초적이라 학생들이 지루해하기도 한다. 다행히 2년 전부터 13~14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자궁경부암백신 무료 접종을 실시해 병원 방문 시 전문의에게 성교육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다만 아직까지 활용도는 높지 않다.

청소년과 미혼 여성의 피임 실천율은.
최 한국 청소년의 성관계 경험률은 5~10% 정도다. 이 중 20~25%가 피임을 한다. 20대 미혼 여성의 피임 실천율도 46.7%로 낮은 편이다. 질외사정법·월경주기법처럼 피임 효과가 떨어지는 방법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문제다.

넬슨 미국의 25~34세 여성의 피임 실천율은 67.4% 정도로 여전히 ‘피임 실패’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20대는 성생활이 활발해지는 시기다. 이성 애인과 장거리 여행을 가거나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과 하룻밤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성병·임신의 가능성이 커진다. 인생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해 잊어서는 안 된다.

피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건가.
최 미혼·기혼과 관계없이 어떤 여성이라도 원치 않는 임신을 하면 낙태의 위험이 높아진다. 낙태로 출혈·감염이 생기거나 자궁 내막이 손상되면 난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난임은 한국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다. 원할 때 아이를 가지려면 평소 올바른 피임을 실천해 몸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넬슨 커리어를 계획하듯 성생활과 피임에도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미혼이라면 피임률이 높으면서도 (원할 때) 다시 쉽게 임신할 수 있는 피임법이 적극 권장된다. 기혼 여성이라면 상황에 맞게 피임하면 된다.

첫째와 둘째 사이에 터울을 두고 싶거나 더 이상 출산을 원하지 않으면 5년 정도 피임 효과가 지속되는 피임을 권한다. 호르몬제제를 더한 자궁 내 삽입 시스템(IUS)이 그 예다. 생리통이 심하다면 이에 대한 치료 효과가 있는 경구피임약을 고려해본다.

여성들이 다양한 피임법에 대해 알고 있나.
넬슨 대부분의 여성은 5~6가지 피임법밖에 모른다. 또한 콘돔이나 경구피임약, 나팔관 시술이 아닌 새로운 방법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여성도 있다. 가령 호르몬을 포함한 체내 삽입형 피임 같은 경우 내 몸에 이물질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불쾌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궁 내 삽입 시스템은 쉽고 빠르고 효과적인 피임법 중 하나이고, 최근 계속해서 새로운 피임법이 개발되고 있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여성 스스로 정확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취합해 고민한 뒤 결정해야 한다.

최 여성들이 모든 피임법을 알기는 어렵다. 망설이지 말고 산부인과 전문의를 찾아가 정보를 얻으면 된다. 나이와 월경주기, 관계 빈도, 월경 불순 여부 등을 고려한 가장 효과적인 최신의 방법, 편리한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선진 피임 문화가 자리 잡으려면.
넬슨 교육뿐이다. 임신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남녀 약 1800명에게 ‘임신과 피임 중 어떤 것이 몸에 더 큰 영향을 주겠는가’를 물었더니 70%가 ‘피임’이라고 답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피임은 임신의 반대말도 아니다. ‘안티-베이비(아기를 거부하는 것)’는 더욱 아니다. 완벽한 타이밍에 임신하기 위한 잘 짜인 인생 계획의 일부다.

최 성관계 시작 연령이 낮아진 만큼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초등학교 6학년~중학교 1학년에는 부모와 함께 산부인과에 방문하기를 권한다. 피임은 ‘순간적 모면’이 아닌 아이를 정말 원할 때 얻기 위한 ‘똑똑한 계획’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글= 윤혜연 기자 yoon.hyeyeon@joongang.co.kr, 사진= 프리랜서 김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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