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성공 지상주의 사회, 20대 후반까지 사춘기적 충동·분노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578호 11면

한창수 자살예방센터장의 진단과 처방 

한창수 고대의료원 신경정신과 교수

한창수 고대의료원 신경정신과 교수

한창수(고대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중앙자살예방센터장·사진) 교수는 “병원을 찾는 청년 환자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위로·칭찬·격려도 없고 가족도 붕괴된 병리적 사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임상 현장에서 본 청년들의 정신적 고통의 원인이 개인에게서보다 가족과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더 많이 찾아진다는 것이다. “전략게임 스타크래프트의 고수들은 병사와 무기만 만드는 게 아니라 치료기능을 하는 메딕을 곳곳에 많이 만들어요.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치료와 쉼터를 마련해줘야 승리할 수 있다는 건 게임에서도 통하는 원리입니다.” 그는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원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치유 사회’로 전환하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부모 의욕 과잉, 정신적 성장 막아 #좌절한 청춘들 마음 쉬게 해주고 #아픔 뒤 더 튼튼해질 환경 마련을

 우리 청년 정신건강의 가장 큰 문제를 꼽는다면 무엇인가.
“우선 사춘기가 지체되는 현상이 심각해 보인다. 10대 초중반은 호르몬 변화와 전두엽 기능이 안정되지 않아 사춘기를 겪게 된다. 보통 18세까지는 뇌기능이 완성되기 때문에 사춘기도 이 무렵에 끝나야 한다. 그러나 병원을 찾는 청년들을 보면 20대 중후반이 되어도 논리나 본인의 이해득실보다 감정이 전두엽을 압도하는 사춘기 증상이 그대로 남아있다. 생물학적 사춘기는 아니지만 충동과 분노에 지배당하는 심리적 사춘기가 지속되며, 분노 및 충동장애를 겪는 것이다.”
 사춘기 지연의 이유는 무엇인가.
“환경의 영향이 크지 않나 생각된다. 뇌가 성장하려면 뒹굴뒹굴하며 쉬는 시간도 필요한데 10~20대 전반을 공부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긴장감 속에 사는 것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공부하라고 채찍질하는 사회, 이런 속에서 정서적인 돌봄을 경험하지 못하는 문제 등 복합적일 것 같다. 이 문제도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정신질환으로 진단할 수 없는 분노장애도 청년 정신건강의 주요 현상이라고 했는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분노와 불만은 열등감의 표현이다. 성공하지 않으면 무시당하고 짓밟힌다는 학습효과의 영향이 크다. 또 고속성장시대의 신화를 목격했지만 지금은 안되는 상황에 대한 억울함도 호소한다. 고속성장시대를 살았던 80년대 학번 이후 부모들의 의욕과잉도 문제다. 자신의 성공방식으로 자녀들에게 학력을 강요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 충고하는 데 익숙한 대화방식 등이 문제다.”
 경제적 고통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기본적인 경제적 욕구가 충족되면 추가적 경제적 여유는 행복에 별 영향을 미치치 못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가 증명한다. 그런데 우리는 경제문제로 인한 정신질환이 심각하다. 우리나라 경제적 수준은 높아졌지만 기본적인 경제적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는 취약계층이 그만큼 많다고 해석할 수 있다. 부모의 조기 은퇴는 중년 정신질환을 악화시키고, 이는 곧바로 자녀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연결고리를 만들기도 한다.”
 사람은 정신적 고통을 통해 더 튼튼해진다고도 하지 않나. 청년 고통을 더 튼튼해지는 계기로 만들 수는 없나.
“트라우마는 사람을 좌절시키기도 하지만 다른 차원으로 성장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성장을 위해선 환경이 필요하다. 충분한 마음의 쉼을 통한 회복의 시간을 거쳐야 하고, 그동안 주변은 기다려주고 보살핌과 지지를 보여줘야 한다. 사회는 개인의 생각과 다양성을 포용해줄 수 있어야 한다.”

양선희 선임기자 sunny@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