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 인력 수입 재개 조짐 … 북·중 밀월, 대북제재 흔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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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중 밀월에 속도가 붙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25~28일 방중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만난 뒤 양측 당국이 후속 조치들을 가시화하면서다. 중국은 우선 대북제재 완화를 행동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여성 노동자 약 400명이 지난 1일 옌볜(延邊)자치주 허룽(和龍)시로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가 5일 보도했다. 국제사회 대북제재로 중단됐던 북한의 외화벌이가 재개됐다는 신호다. 이 매체는 중국의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에서) 이렇게 많이 오는 건 오랜만의 일”이라고 전했다. 이런 흐름에 대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틈이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북한 지도층의 방중은 속속 이어지고 있다. 5일엔 북한의 대표적 ‘중국통’으로 분류되는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이 베이징에 도착해 방중 일정을 시작했다.

국경지역서 북 노동자 이동 포착 #북 중국통 김성남도 베이징 방문 #이용호, 러시아서 외무회담 예정 #김정은·푸틴 전격 만남 가능성도

북한이 중국을 고려해 내놓은 카드는 6자회담 복귀다. 김정은 위원장이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에 복귀할 뜻을 직접 밝혔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6자회담의 의장국은 중국이다. 27일 남북 정상회담과 5월로 거론되는 북·미 정상회담 논의 과정에서 ‘차이나 패싱(중국 소외)’ 논란까지 나왔지만 6자회담이 재개될 경우 주도권은 중국이 잡을 가능성이 크다. 니혼게이자이는 복수의 북·중 소식통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하면서 정상회담을 정식 제안한 것이 북한이었다고 전했다.

북한 관영 매체들도 분주하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5일자 1면에 지난달 23일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낸 편지를 실었다. 서신 도착 후 13일이 지난 시점이다. 정영태 북한연구소장은 “뒤늦게 이런 기사를 실은 것은 북한이 지난달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뒤 형성된 북·중 관계 모멘텀을 계속 살려 나가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다각도로 친중 성향이 뚜렷한 기사를 실었다. 김일성 주석이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 총리를 병문안했던 일화를 소개하고 시 주석이 녹화사업을 강조하고 나섰다는 소식까지 일일이 전했다. 특히 중국이 미국과 무역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은 중국 입장을 위주로 보도했다. 드러내 놓고 중국에 밀착하는 양상이다.

북한은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와의 밀월에도 시동을 걸고 있다. 이용호 외무상은 10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과 모스크바에서 회담할 예정이라고 러시아 외교부가 4일(현지시간) 밝혔다. 김정은이 중국에 이어 러시아를 전격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날 가능성도 거론된다. 댄 코츠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4일(현지시간) 기자들에게 “김정은이 러시아 측으로부터 방문 요청을 받은 상태”라고 전했다.

한편 남북은 정상회담을 위한 본격적인 현장 준비에 나섰다. 이날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의전·경호·보도 관련 실무회담을 열면서다. 정상회담이 실제로 진행될 장소를 양측이 택해 실무형으로 이뤄졌다. 실무회담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식사 시간 없이 진행됐다.

한국 정부 대표단은 김상균 국가정보원 2차장이 수석대표로 나섰으며 조한기 청와대 의전비서관, 권혁기 춘추관장,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신용욱 청와대 경호차장이 참석했다. 북한에선 김정은의 첫 비서실장 격이었던 김창선이 ‘국무위원회 부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대표단을 이끌었다. 실제로 국무위원회에 부장이라는 직함이 있는지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북한 대표단은 김정은 측근인 마원춘 국무위원회 설계국장을 포함해 신원철·이현·노경철·김철규 등 6명으로 구성됐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밝혔다. 회담에선 군사분계선을 넘는 첫 북한 지도자가 될 김정은의 동선과 오·만찬 등 일정, 생중계 여부 등이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실무회담에 참여한 윤건영 실장과 김창선은 각각 남북 최고지도자의 ‘복심’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김창선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방한에 동행했고, 윤 실장은 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대표단에 포함돼 구면이다. 이들은 남북이 정상회담 전에 하기로 한 핫라인(직통전화) 통화 등에 대해서도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회담 분위기에 대해 “진지하고 꼼꼼했다”며 “오늘 해야 할 논의는 다 했고, 두 번째 실무회담 날짜를 잡기로 했다”고 말했다. 핫라인 개통을 위해 별도로 열릴 통신 실무회담은 7일 판문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서울=전수진·위문희 기자, 도쿄=윤설영 특파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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