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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선별장도 과부하…지자체의 재활용품 수거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자체의 공공 재활용 쓰레기 선별장 가보니 

지난 3일 오전 서울 양천구의 재활용 쓰레기 선별장에서 수거 트럭이 재활용 쓰레기들을 내리고 있다. 임선영 기자

지난 3일 오전 서울 양천구의 재활용 쓰레기 선별장에서 수거 트럭이 재활용 쓰레기들을 내리고 있다. 임선영 기자

“어제보다 더 많이 들어온 것 같은데…”
지난 3일 오전 서울 양천구의 한 재활용 쓰레기 선별장. 재활용 쓰레기를 실은 1t 트럭이 들어오자 한 선별 작업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양천구청 소유 부지(16만㎡·4만8000평)에서 민간 사업자가 위탁 운영하는 이 선별장은 하루 평균 50t가량의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한다. 단독주택 등 일반 주거지역과 상가 건물의 재활용 쓰레기다. 민간 재활용 업체와 계약해 처리하는 공동주택과 달리 단독주택 등은 구청이 직접 수거한다.

양천구의 재활용 쓰레기 선별장에선 이날 아파트 1층 높이 만큼의 재활용 쓰레기가 쌓였다. 임선영 기자

양천구의 재활용 쓰레기 선별장에선 이날 아파트 1층 높이 만큼의 재활용 쓰레기가 쌓였다. 임선영 기자

하지만 최근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터지면서 며칠 사이 처리량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민간 재활용업자들이 수거를 하지 않자 일부 아파트 주민들이 몰래 내놓는 경우도 있어서다. 이날 오전 이 선별장으로 들어온 폐비닐과 폐플라스틱 등 재활용 쓰레기만 아파트 1층 높이(약 3m)가 넘게 쌓였다. 선별장 관계자는 “어제만 70t 정도 처리했는데, 오늘도 그 정도 될 것 같다”며 “아무래도 밤늦게까지 작업해야 할 듯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선별장 한쪽에선 집게차가 쉴 새 없이 재활용 쓰레기가 가득 든 비닐봉지를 집어 선별 작업을 하는 약 40m 길이의 컨베이어 벨트 입구에 올렸다.

재활용 쓰레기들은 약 40m길이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분류된다. 임선영 기자

재활용 쓰레기들은 약 40m길이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분류된다. 임선영 기자

재활용품? 80%가 폐기물, 재활용되는 건 고작 20%

재활용품과 쓰레기를 분류하는 작업장 곳곳에선 악취가 코를 찔렀다. 비닐·스티로폼·페트병에 남아있는 음식 찌꺼기 등이 썩으면서 나는 냄새였다. 이렇게 이물질이 묻었거나 훼손된 폐비닐이나 스티로폼 등은 쓰레기로 분류돼 처분된다. 재활용 쓰레기는 20여 명의 작업자가 일일이 손으로 골라내 10여 가지 종류로 분류했다. 한 작업자(51)는 “비닐봉지에서 반려동물 사체가 나온 적도 있고 날카로운 바늘 같은 것에 손을 찔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처리하는 재활용 쓰레기 50t 중에서 실제 재활용품으로 분류되는 건 20%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는 ‘잔재 폐기물’로 분류돼, 선별장에서 압축 처리한 후 고형연료를 만드는 업체나 소각장 측에 비용을 내고 처리한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이곳의 재활용 쓰레기 선별량은 2014년 4013t에서 2016년 3880t으로 줄었지만, 잔재물은 같은 기간 6991t에서 9742t으로 늘었다.

작업자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재활용 쓰레기들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있다. 임선영 기자

작업자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재활용 쓰레기들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있다. 임선영 기자

민간업자 아파트 재활용품 수거 거부에 지자체 직접 수거

이런 상황에서 서울과 경기도의 기초 단체들이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재활용 업자에게 맡겨서 처리했던 재활용품 수거를 직접 하거나, 이런 방안을 검토하면서 각 공공 선별장도 비상이 걸렸다. 지자체가 직접·위탁 운영하는 공공 선별장도 지역마다 겨우 한 곳 정도 있거나 없어서 민간 업체에 맡기고 있는 상황인데 현재도 전부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서울 도봉·서대문·마포·구로·금천·동작·서초·종로·노원구는 선별장 부지와 시설이 없어 민간 업체나 다른 자치구에 처리를 맡기고 있다.

이물질이 묻은 재활용 쓰레기 등은 잔재 폐기물로 따로 모아진다. 임선영 기자

이물질이 묻은 재활용 쓰레기 등은 잔재 폐기물로 따로 모아진다. 임선영 기자

그렇다 보니 재활용 선별 처리 한도를 한참 넘겨서 운영하는 곳도 부지기수다. 페트병 등 폐플라스틱류 수거가 문제가 된 경기도가 특히 문제다. 폐비닐류나 폐스티로폼은 경기도의 상당수 지자체가 1~3년 전부터 아파트 몫까지 수거를 해 감당할 수 있지만, 폐플라스틱 처리는 아파트 등에 맡겨왔다. 그래서 폐플라스틱류를 자동 선별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춰지지 않은 공공 선별장도 많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실에 따르면 경기도 내 공공 선별장 31곳 중 플라스틱 자동선별 시설을 갖추지 않은 선별장은 모두 20곳이나 된다. 이 경우 작업자들이 직접 손으로 골라내야 한다.

잔재 폐기물은 압축된 후 철사로 묶여 고형연료 업체나 소각장으로 보내진다. 임선영 기자

잔재 폐기물은 압축된 후 철사로 묶여 고형연료 업체나 소각장으로 보내진다. 임선영 기자

단독주택 등 처리하는 공공 선별장도 이미 과부하 상태

경기도 성남시 선별장은 1998년 문을 열 당시만 해도 하루 평균 50t 상당의 플라스틱류를 처리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현재 처리 물량은 설계 당시보다 30t이 많은 80t을 처리한다. 이것도 부족해 시설을 현대화해 100t 정도를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용인시 선별장도 하루 평균 최대 35~40t의 플라스틱류를 분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췄지만, 실상은 50t 이상씩 처리하는 날이 더 많다. 수원시 선별장도 현재 하루 평균 최대 처리 물량인 60t을 꽉 채운 지 오래다.

지자체들은 이런 상황에서 아파트의 재활용 물량까지 공공 선별장에서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용인시 관계자는 “단독주택과 상가만 담당하는 현재도 선별장 처리 한도를 한참 넘겨 직원들이 야근과 특근을 해 간신히 처리하고 있는 상황인데 아파트 물량까지 떠안으면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고압 처리된 스티로폼은 창틀이나 액자 틀의 테두리를 장식하는 데 재활용된다. 임선영 기자

고압 처리된 스티로폼은 창틀이나 액자 틀의 테두리를 장식하는 데 재활용된다. 임선영 기자

이에 경기도는 선별장을 신·증설할 수 있도록 국비를 지원해 달라고 환경부에 건의했다. 하지만 신·증설까진 시간이 걸리는 데다 인근 주민들의 반발 등의 벽에 가로막히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 선별장 추가 설립을 추진 중인 경기도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새로 건설할 선별장도 단독주택과 상가 등의 재활용품 수거 물량에 맞춰 설계한 상황이라 아파트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설계 변경 등을 검토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는 조금이라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각 아파트를 상대로 ‘재활용업체와 계약할 것인지’, ‘지자체에 맡길 것인지’를 묻고 있다. 민간 업체에 시가 직접 위탁을 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폐플라스틱·빈 병, 공짜로 줘도 안 가져가는데…대책은 없나

공공 선별장을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분리한 재활용품이 팔리지 않으면 야적장에 마냥 쌓아둬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각 지자체는 처리한 폐비닐과 폐지, 빈 병, 고철, 페트병 등 폐플라스틱류를 입찰을 통해 계약한 민간 재활용업자들에게 돈을 받고 팔아왔다.

하지만 중국의 수입 규제 정책 등으로 폐비닐과 폐플라스틱류 등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계약한 재활용업자들도 수거를 꺼리는 상황이다. 지난해 수도권에서 ㎏당 130원에 거래되던 폐지 가격은 현재 90원 선으로 떨어졌다. 페트병도 지난해 330원(㎏당)에서 250원으로 곤두박질쳤다.

빈 병류 가격도 하락세다. 맥주병이나 사이다병 등 보증금을 받는 빈 병은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와인병이나 드링크 병 등 보증금 대상에서 제외된 빈 병은 내놔도 가져가지 않는다. 그래서 빈 병 가격도 지난해보다 20~30%정도 떨어졌다.

유리 재활용 업체 관계자는 “일부 제병사들이 재활용 유리병보다 유리창을 만드는 판유리를 많이 사용하면서 판로가 막혀 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있어서 빈 병을 가져가도 돈이 안 된다”고 말했다. 유리 재활용 업계는 현재 처리하지 못한 빈 병 재고가 7만t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서울 양천구의 재활용 쓰레기 선별장에 쌓여있는 빈 병들. 임선영 기자

서울 양천구의 재활용 쓰레기 선별장에 쌓여있는 빈 병들. 임선영 기자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의 한 선별장 관계자는 “재활용 쓰레기 단가는 떨어지는데, 폐기물 처리 비용은 늘면서 4년 전과 비교해 매출이 70%정도 급감했다”며 “서울 자치구들이 위탁 운영을 맡긴 업체 중에선 이런 손실을 더는 감당 못 해 문을 닫은 곳도 있다”고 주장했다.

재활용업체들이 선별장의 재활용품도 거부하는 상황이 되자 각 지자체는 계약 단가를 낮추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화성시 등 일부 지자체는 빈 병 등은 공짜로 넘기고 있다. 공짜로 준다고 해도 가져가는 재활용업자들이 없자 수원시는 아예 폐기물 처리 비용까지 내며 빈 병을 처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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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유독 수도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한성기 경기도 자원순환과장은 “폐비닐과 폐스티로폼, 폐플라스틱 등을 수거하고 이를 고형연료(SRF·Solid Reuse Fuel)로 만드는 업체의 대부분이 수도권에 몰려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재활용품 수입 금지에 이어 정부 등에서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고형연료를 꼽으면서 판로가 막힌 국내 제조업체들이 생산량을 줄여 수도권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울환경연합 관계자는 “택배나 배달 음식만 봐도 손상을 줄이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폐비닐과 폐플라스틱 등 일회용 포장재를 많이 사용한다”며 “이런 재활용품을 덜 쓰고, 덜 생산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수원=임선영·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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