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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속도 10㎞만 줄여도 보행자 중상확률 20%p '급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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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자동차와 보행자 간 충돌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시내 도로에서 차량 속도를 10㎞만 줄여도 유사시 보행자가 중상을 입을 확률이 20%포인트(p)나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차량 속도가 시속 30㎞ 이하일 때는 보행자가 차량과 충돌해도 중상을 입을 가능성이 15%대로 급격히 떨어졌다.

교통안전공단, 차대 사람 충돌 시험 #시속 60㎞때 보행자 중상 확률 92.6% #시속 50㎞땐 72.7%로 20%p 줄어들고 #30㎞ 충돌 때는 15.4%로 중상 확률 '뚝' #도심부 속도, 선진국 수준 제한 필요 #정부 내년부터 60㎞→50㎞ 낮출 계획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최근 경기도 화성에 있는 공단의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실시한 '속도별 자동차 대 보행자 인체모형 충돌시험'에서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1일 밝혔다.
 시험은 보행자 교통사고 때 자동차 속도에 따른 보행자의 상해 정도를 측정하기 위한 것으로 각각 시속 60㎞, 50㎞, 30㎞로 달리는 자동차가 인체모형과 부딪힐 때 발생하는 상해치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 결과, 보행자가 시속 60㎞로 달리는 차량과 충돌했을 경우 중상을 입을 가능성은 92.6%로 나타났다. 다리 등 하체도 큰 타격을 입지만 특히 머리에 충격이 집중됐으며, 사망확률이 80% 이상으로 예측됐다.

시속 60㎞인 차량과 충돌한 보행자의 머리가 앞 유리에 세게 부딪히고 있다.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시속 60㎞인 차량과 충돌한 보행자의 머리가 앞 유리에 세게 부딪히고 있다.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반면 시속 50㎞인 차량과 부딪히는 상황에서는 중상 가능성이 72.7%로 시속 60㎞일 때와 비교해 20%p가 낮아졌다. 속도를 10㎞만 줄여도 그만큼 보행자 보호 효과가 올라간다는 의미다. 또 어린이 보호구역이나 노인 보호구역 등의 제한 속도인 시속 30㎞ 이하로 달리는 차량과 보행자의 충돌사고 시중상 가능성은 15.4%로 크게 떨어졌다.

시속 30㎞ 차량과 충돌한 보행자가 자동차 후드에 머리를 부딪히고 있다.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시속 30㎞ 차량과 충돌한 보행자가 자동차 후드에 머리를 부딪히고 있다.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공단의 이재완 안전연구처장은 "충돌속도가 높아질수록 보행자의 머리가 자동차 후드나 앞면 유리와 2차로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시속 60㎞ 상황에서는 머리가 차량의 앞 유리를 거의 뚫고 들어갈 정도로 강한 충격이 가해진다"고 설명했다.

 이 처장은 또 "안전벨트나 에어백 등 보호장치가 있는 차량 탑승자와 달리 보행자는 보호 장치가 거의 없기 때문에 사망사고 확률도 높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근 5년간 교통사고 치사율을 비교하면 '차대 차' 사고는 100건당 1.2명이지만, '차대 사람' 사고는 3.7명으로 3배 이상 높았다. '차대 차' 사고 건수가 81만여 건으로 '차대 사람'(25만건)보다 3배 넘게 많지만 사망자 수는 9700명 대 9200명으로 큰 차이가 없다.

  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2015년 기준으로 OECD 회원국의 인구 10만 명당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평균 1.1명이지만, 우리나라는 세배 넘는 3.5명이다.

 이처럼 국내의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많은 것은 도시부 제한속도가 선진국보다 높은 데도 원인이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도시부 제한속도를 시속 50㎞가량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 도심에서 선진국보다 높은 시속 60㎞ 이하로 설정돼 있으며, 서울 올림픽대로·강변북로 등 자동차 전용도로는 시속 80㎞까지 달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도 내년부터 도심지역의 제한속도를 시속 60㎞에서 50㎞로 낮추기로 했다. 올해 중으로 이 같은 내용으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개정작업을 진행한다. 특히 주택가나 어린이·노인 보호구역 등은 도로 여건에 따라 시속 10~20㎞ 이하로 제한 속도가 더 강화될 예정이다. 앞서 덴마크와 독일은 도심 제한속도를 시속 60㎞에서 50㎞로 낮춘 뒤 사망사고와 교통사고가 20% 넘게 줄어드는 효과를 거둔 바 있다.

시속 30㎞로 제한된 어린이 보호구역. [중앙포토]

시속 30㎞로 제한된 어린이 보호구역. [중앙포토]

 권병윤 공단 이사장은 “도시부 도로의 제한속도를 낮추는 것은 선진국 수준의 보행자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추진과 함께 사회 구성원 전체의 지지와 동참도 요구된다"고 말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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