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돈·프레이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올림픽 여자수영사에 찬란한 발자취를 남겨놓은「돈·프레이저」. 여자자유형 1백m에서 최초로 1분벽을 돌파, 남자수영의 듈러리로 머물러있던 여자수영에 본격적인「속도시대」를 열었던 그녀는 56년 멜버른·60년 로마·64년 동경올림픽 자유형 1백m를 3연속 제패한 여걸이다.
1백년에 가까운 올림픽 역사를 통해 지금까지 4연속 우승자 1명 (미국의 투원반선수「엘프리드·오터」)과 3연속 우승자 8명이 배출됐으나 여자로서, 그리고 수영종목으로서는 그녀가 이룩한 3연패가 유일한 것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 뛰어난 업적과는 달리 그녀의 생애는 파란만장하기 짝이 없어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수차례 영화로도 소개되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시드니근교의 한 공업도시에서 노동을 하는 부모의 8남매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56년2윌「윌리·아우든」의 20년묵은 기록을 깨뜨리고 당시 챔피언이었던「로레인·크랩」까지 제치면서 국내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올림픽의 유망주로 각광받게 된다.
첫 출전한 국제대회이기도 했던 56년 올림픽에서 그녀는「크랩」과 격렬한 선두다툼을 벌인끝에 누가 이겼는지 모를 정도로 나란히 골인한다.
장내방송을 통해 자기가 0.3초차로 우승한 것을 확인한「프레이저」는 뛸듯이 기뻐하며 TV보도진의 사다리를 빌어 관중석으로 뛰어올라가 지켜보던 부모를 끌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4년뒤 로마올림픽에서 그녀는 항명파동을 일으킨다. 1백m 우승, 다음날 그녀는 느긋한 심정으로 외출, 쇼핑도 하고 외식도 하며 즐기다 들어왔는데 느닷없이 코치로부터 혼계영의 접영영자로 출전채비를 갖추라는 지시를 받는다.
사전통보가 없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녀는 코치의 지시를 묵살했고 급기야는 전선수단이 남은 기간동안 그녀와 말상대조차 해주지 않는「소외 처벌」을 받게 된다.
동경올림픽을 2년앞둔 62년10월 가족과 함께 축구경기를 보고 귀가중이던 그녀는 차량 충돌사고로 어머니와 언니를 잃고 자신도 척추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다. 그러나 7개월의 투병생활끝에 기적적으로 재기한 그녀는 기어이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다. 당시 나이는 27세, 팀 후배들이「할머니」라며 놀릴 때였으나 기록은 멜버른 (1분2초F), 로마 (1분1초2) 때보다 훨씬 뛰어난 59초5였다.
동경올림픽을 마지막으로「프레이저」는 풀과 영영 이별하게 되는데 이는 체력의 한계때문이 아니라 호주수영연맹의 징계 (10년간 자격정지) 때문이었다.
대회 폐막일 자정무렵 그녀는 동료2명과 함께 대회참가 기념용으로 간직하기 위해 제국호텔의 국기게양대에서 일장기를 슬쩍했다가 잡힌것이다.
이처렴「프레이저」는 엉뚱한 짓도 많이 저질렀으나 호주국민들은 그녀의 풀바깥에서의 행동에는 아주 관대해 그녀를 국가적인 영웅으로 칭송하는데 인색치 않았다. <김동균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