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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출신 금감원장 ‘김기식 쇼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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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호 01면

김기식

김기식

‘재벌 저격수’ ‘금융권 저승사자’로 불리는 김기식(52·사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0일 금융감독원장에 임명됐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9년 1월 통합 금감원이 출범한 이래 시민단체 출신의 정치인이 금감원장을 맡는 것은 처음이다.

경제민주화 공약 내건 문재인 정부 #장하성·김상조와 3각편대 완성 #“검찰총장에 민변 임명한 격” #금융권·재계는 기대와 불안 교차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날 오전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김 전 의원을 차기 금감원장으로 임명 제청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오후에 이를 재가했다. 금감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이 아니어서 대통령 재가로 임명 절차는 완료된다.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 인류학과(86학번)를 졸업한 김 신임 금감원장은 94년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참여연대 창립에 참여해 사무처장을 지냈다. 2012년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19대(2012~16년) 국회의원을 지냈다. 특히 2014~16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야당 간사를 맡아 대기업 계열 금융사에 규제를 강화하는 입법에 앞장섰다. 은산분리 완화를 반대한 그는 비은행금융지주의 산업자본 소유를 금지시킨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통과를 주도했다. 2016년 이후엔 더미래연구소장을 맡아 문재인 정부의 금융개혁 밑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개혁 성향이 강한 시민단체 출신 금감원장의 출현에 금융계는 술렁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감원 관계자는 “정부 관료나 학계, 금융업계 출신이 아닌 시민단체 출신 원장은 처음이라 불안한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은행권에서는 놀랍다는 반응이 많았다. 익명을 요청한 A은행 인사는 “사람은 참 좋지만 (정무위 시절을 돌이켜보면)은행의 현재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개혁이나 규제를 내세웠기 때문에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도 “검찰총장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 변호사를 임명한 격”이라며 “금융권과 재계에 대한 개혁 요구가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도 김 원장 임명 소식으로 술렁였다. 김 원장은 재벌 개혁에 대해 강한 소신을 갖고 있다. 지난해 2월 인터넷방송인 오마이TV에 출연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3년 가까이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때도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우려했지만, SK가 망했습니까? 오히려 더 잘 굴러갔습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구속됐을 때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재벌 총수가 구속될 때마다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달라’고 하는데 대한민국 경제가 흔들렸습니까? 그런 사례는 없습니다”고 말한 일도 있다.

◆참여연대 삼각편대=김 원장의 임명으로 경제민주화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로선 ‘개혁의 삼각편대’를 완성했다. 청와대의 장하성 정책실장,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원회의 김상조 위원장, ‘금융 검찰’ 금감원의 김 원장이다. 세 사람의 공통분모는 참여연대다. 고려대 교수였던 장 실장이 경제민주화위원장을, 한성대 교수 출신 김상조 위원장이 재벌개혁감시단장과 경제개혁센터 소장을 지냈을 때 김 원장은 정책실장과 사무처장으로 두 사람을 뒷받침했다. 그 시절 장 실장의 트레이드 마크는 ‘소액주주 운동’이었다. 대기업 계열사의 주식을 가진 소액주주와 연대해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을 질타했다.

여당 “김기식 전문역량 발휘” … 야당 “관치 선전포고”

소액주주 운동은 이제 ‘스튜어드십 코드’로 부활했다.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 기업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자는 취지다. 금감원은 은행·보험·증권·자산운용 등 국내 주요 기관투자가들을 직접 감독한다. 김 원장이 이끄는 금감원에서 강조하는 스튜어드십 코드에 금융업체들이 협조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600조원이 넘는 국민연금 기금과 90조원이 넘는 주식형 펀드 자금(국내 주식형+혼합형)을 합치면 재벌 총수들의 지분을 능가한다.

◆더글러스 쇼크=김 원장에 대한 금융권의 반응은 1930년대 미국 월가가 느낀 ‘더글러스 쇼크’와 비슷하다. 37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변호사 윌리엄 더글러스(1898~1980년)를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에 임명했다. 더글러스는 금융-산업 분리와 반독점을 역설했다. 이런 그가 대공황 이후 ‘악의 소굴’로 찍힌 월가의 감독관이 됐다. 미 금융역사가인 존 고든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월가 눈에 비친 더글러스는 루스벨트의 샷건(산탄총)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더글러스는 38년 뉴욕증권거래소(NYSE) 이사의 공금 횡령 사건을 계기로 강도 높은 개혁을 밀어붙였다.

하나은행 채용 비리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는 최흥식 전 금감원장의 사임으로 공석이 됐던 금감원장 자리는 18일 만에 채워졌다. 금감원은 하나은행에 대한 특별검사를 진행 중이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렸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정무위 시절부터 금융 분야에 관한 개혁적이고 전문적인 역량을 십분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금융 분야의 관치를 대놓고 하겠다는 선전포고다. 적폐도 이런 적폐가 없다”고 비판했으며, 민주평화당은 “관치금융을 넘어선 인치금융”이라고 주장했다.

주정완·김형구·염지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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