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KN-TV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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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영어에 스필오버(spill over)라는 말이 있다. 「흘러 넘친다」는 뜻이지만 「부작용」또는 「여파」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런데 이 말이 통신용어로는 방송위성의 뇌파가 목적지역을 넘어 주변의 다른 나라까지 도달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국제정보질서라는 관점에서 보면 세계중심체계(center)의 주변체계(periphery)에 대한 일방적이고 불공평한 문화주권의 침해를 말한다.
현재 주한 미군을 대상으로 방송하는 AFKN-TV가 바로 그런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경우다.
우선 AFKN-TV는 57년 개국이래 31년이란 긴 세월동안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에 합당된 주파수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전파나 프로그램 내용에 있어 국내 통신법과 방송법의 통제범위를 벗어난 치외법권을 누려왔다.
그뿐 아니라 미국의 상업주의적 대중문화를 무차별로 한국에 쏟아 붓는 문화의 파이프 라인구실도 해왔다. 특히 83년10월부터는 태평양 통신위성을 통해 미국본토로부터 직접위성방송(DBS)을 실시함으로써 스필오버현상은 더 한층 빈번해졌다.
종전에는 프로그램을 미국본토에서 항공편으로 공수하여 11시간 이상의 시차를 두고 방영되던 것이 직접위성방송으로 미국과 한국은 같은 시청권이 되었다. 이른바 「맥루헌」의 『지구촌』이 실현되었다.
물론 모든 비판적 기능이 통제되던 시절 AFKN-TV가 한국의 지식층에게 국내외의 중대한 뉴스를 전달해 준 역설적 측면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매시』(MASH)같은 드라마를 장기간 방영한 것은 AFKN-TV였고, 『스와트』같은 미국내에서도 사회적 비판의 소리가 높았던 외설·폭력물을 방영한 것도 바로 그 방송이었다.
프로그램 내용도 문제지만, 현재AFKN-TV가 한국에서 쓰고 있는 VHF(초단파방송)채널방식은 해외 주둔군방송으로서는 유일한 특혜다. 서독과 일본에서는 UHF(극초단파)또는 케이블 TV를 쓴다.
국내에 여유가 없는 귀중한 VHF채널을 4만여명의 시청자(미군)를 위해 쓰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 스필오버현상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도 AFKN-TV의 유선변경은 꼭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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