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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에 20% 손해 … ‘고위험 ETF 신탁’ 주의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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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는 거래 은행에 들렀다가 1~2개월 만에 2%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품이 있다고 추천을 받았다. 예금을 1년 넣어야 받을 수 있는 이자가 2% 남짓인데 2개월 만에 그만큼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말에 A씨는 솔깃했다. 은행 직원이 추천한 상품은 상장지수펀드(ETF) 신탁이었다. 원금 손실 위험이 있다고 은행 직원이 주의를 줬지만, 으레 하는 말이겠지 싶어 듣고 넘겼다. 은행에서 파는 신탁상품이니 예금과 비슷하겠거니 생각했다. A씨는 5000만원을 그 자리에서 투자했다. 이후 주가지수가 하락하면서 한 달 만에 수익 2%가 아니라 원금 1000만원 손실을 봤다. A씨가 투자한 상품은 ‘레버리지 ETF 신탁’이었다.

금감원, 금융상품에 첫 소비자경보 #지수 변동 폭 2배 수익률 맞춰 설계 #주가 떨어지면 손실도 2배로 늘어 #은행권, 지난해에만 4조 넘게 팔아 #최근 증시 변동성 커져 투자 주의를

28일 금융감독원이 고위험 ETF 은행 신탁상품에 대한 소비자경보 ‘주의’ 단계를 발령했다. 2012년 6월 소비자경보 제도를 도입한 이래 특정 금융상품을 대상으로 한 건 처음이다. 소비자경보는 사안의 연속성·심각성에 따라 ‘주의→경고→위험’ 3단계로 나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TF는 바로 사고팔 수 있는 주식과 여러 자산을 담아내는 펀드의 특징을 합친 상품이다. 특정 지수나 가격의 오르내림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된다. ETF 신탁은 ETF를 은행의 특정금전신탁에 편입한 상품이다. 일반 ETF 신탁상품 이외에 레버리지 ETF 신탁, 인버스 ETF 신탁 등 고위험 상품도 있다.

레버리지 ETF 신탁은 추종하는 지수 변동 폭의 2배 수익률을 올리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물론 지수가 떨어지면 손실도 2배가 된다. 인버스 ETF는 주가 방향과 반대로 수익률이 결정되는 상품이다. 지수가 하락하면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다. 리버스 ETF라고도 한다. 이들 레버리지·인버스 ETF 신탁은 고위험 등급으로 분류된다. 최악의 경우 원금 전액을 손해 볼 수 있어서다. 또 레버리지 상품의 특성상 지수가 오르더라도 반드시 2배 수익률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기초지수가 등락을 거듭하다가 올랐다면 일부 손실도 날 수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권에서 ETF 신탁 상품을 8조56억원 판매했다. 2016년(2조2999억원)과 비교해 3배 넘게 급증했다. 특히 지난해 팔린 고위험 등급 ETF 신탁은 4조1397억원으로 전체 ETF 신탁 판매액의 절반을 넘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미·중 무역 전쟁으로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한층 커졌다. 고위험 ETF의 손실이 불어날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커졌다.

전갑석 금감원 소비자보호처 분쟁조정2국 팀장은 “2015년 이후 금감원에 제기된 관련 민원은 19건으로 아직 소피자 피해가 커지지 않지만,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시 민원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며 “소비자의 재무 상황과 투자 성향에 맞는 금융상품에 투자하도록 권고하기 위해 ‘주의’ 단계의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다”고 말했다. 류한서 금감원 분쟁조정2국 선임은 “은행에서 (고위험 ETF 판매 시) 관련 서류나 절차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어 불완전 판매 소지는 적다”면서도 “은행에서 판매하다 보니 예금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손실이 클 수 있는 고위험 상품이란 점을 투자자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 스스로 고위험 ETF의 특징을 제대로 알고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고영기 KEB하나은행 신탁부 차장은 “ETF의 종류가 많고 특징도 다 다르고 시장의 변동성까지 워낙 커진 상태라 주의할 필요가 있다”며 “가입한 ETF가 추종하는 기초지수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그 변동성을 감수할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 차장은 “파생 요소가 가미 안 된 상품, 채권형 상품 등 비교적 안전한 ETF 상품도 있으니 자신의 투자 성향을 잘 알고 거기에 맞는 상품군에 접근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고란·이새누리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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