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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글로벌 제약사에만 유리"…우려하는 국내 제약업계

중앙일보

입력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2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 (FTA) 개정 및 미국 철강 관세 협상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20180326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2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 (FTA) 개정 및 미국 철강 관세 협상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20180326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6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관련 브리핑에서 "미국 측에서 국내 제약사와 차별적인 면을 삭제하고 모든 해외 제약사들에 내국민 대우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며 "검토 결과 내국민 대우 위반일 때는 이를 고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차별적인 면이 구체적으로 뭔지, 내국민 대우 위반인 내용이 뭔지 밝히진 않았다. 하지만 글로벌 제약사의 요구가 일정부분 수용되는 쪽으로 합의를 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도 "글로벌 혁신 신약 약가 제도(한국의 수입 신약 가격 책정 제도)를 한·미 FTA에 합치되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미국 제약업계가 요구해 왔던 사항이다.

국내 제약업계는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결과에 대해 "미국 제약업계 요구만 들어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하는 분위기다. 글로벌 '공룡'으로 성장한 다국적 기업과 걸음마 단계인 국내 제약업체들이 똑같은 입장에서 경쟁해야 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

미국 제약협회(PhRMA)는 지난 2009년부터 한국 식약당국의 수입 신약 가격 책정 제도를 문제 삼아 왔다. 한국 당국이 미국 제약회사가 특허를 보유한 신약을 수입할 때 미국 시장 판매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수입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또 한국에서 임상시험을 하는 등 한국 정부가 제시하는 일정 조건을 갖춰야만 약품 가격의 10%를 높여주는 정책도 차별적인 규제라고 지적해 왔다. 이 부분을 수정한다면 건강보험료 재정에 타격이 불가피 하다.

보건복지부와 국내 제약업계는 보험 체계가 다른 미국과 한국 시장의 약품 가격 정책을 단순 비교해선 곤란하다고 반박해 왔다. 미국의 약품 구매 시장은 민간 보험을, 한국은 공공보험(국민건강보험)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미국 약품 가격 인상은 곧 국민의 건강보험료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제약사, 국내 업체 R&D 돕는 제도도 문제 삼아" 

미국 등 다국적 제약사들은 또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제도'도 문제 삼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 신약 연구개발(R&D) 역량이 뛰어난 기업에 대해 국가 R&D 우선 참여, 세제 지원, 약품 가격 결정 우대 등의 혜택을 주는 제도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이 제도가 국내에서 R&D 비용을 지출한 제약사에게만 혜택을 주고 있어 해외 기업에는 불리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그동안 한국 정부는 단순히 의약품 판매만이 아니라 국내 제약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곳에 주는 혜택이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의 R&D 투자를 필수 요건으로 삼고 있다고 반박해 왔다.

"한국 제약사들, 미국 진출 요원…미국 요구만 수용할지도" 

한편 국내 제약업계는 향후 한국 정부가 미국 제약업계 요구를 수용하고, 한국 제약사들의 미국 시장 진출을 확대할 수 있는 협상안을 얻는다 하더라도 국내 제약사들이 당장 얻을 수 있는 실익은 미미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2017 제약산업 통계정보'에 따르면 한국 제약사들의 지난해 미국 수출액은 1억1628만 달러(약 1260억원)으로 전체 수출액의 3.7%에 불과하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한국 제약업계의 신약 개발 경쟁력은 미국·유럽 제약사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기 때문에 미국 시장 진출은 요원한 상황"이라며 "국내 업계에 주는 인센티브가 사라진다면, 국내 제약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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