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발표할 게 있으니 12시 10분 사무실 앞에서 뵙는 걸로.”
26일 오전 11시 30분쯤 이명박(77) 전 대통령 측 강훈 변호사가 기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뇌물ㆍ횡령 등 혐의로 구속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구치소 방문조사를 2시간 30분 앞둔 시점이었다.
MB “검찰에게 공정한 수사 기대하기 무의미”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열림’ 사무실에 모인 기자들 앞에서 강훈 변호사는 준비해온 A4용지 한장짜리 발표문을 읽었다. “오전 이 전 대통령을 접견해 의논한 끝에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기로 했고 검찰에도 같은 의사를 전달했다.”
당초 검찰은 이날 오후 2시 이 전 대통령이 수감된 서울동부구치소로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 부장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다스 관련 의혹을 조사할 계획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를 차명 소유해 운영하고 이 회사에서 비자금ㆍ법인카드 등을 합쳐 350억원 가량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삼성에게 이건희 회장 사면을 대가로 다스 소송비 68억원을 대납하게 한 혐의도 있다.
예정대로 구치소 찾은 검찰, 독방에서 나오지 않은 MB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조사에 불응하면서 조사는 무산됐다. 강훈 변호사는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며 조사 거부 이유를 설명했다. 강 변호사는 또 “전직 대통령으로서 법을 준수하는 차원에서 지난 소환조사에 응했다”며 “이 전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물으라고 여러 차례 천명했지만 검찰은 구속 후에도 주변 사람을 끊임없이 불러 조사하고, 일방적 피의사실도 무차별적으로 공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예정대로 오후 2시 이 전 대통령이 구속된 서울동부구치소로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냈다. 이 전 대통령을 설득해 조사를 이어나가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동부구치소로 출발한 차량 번호를 이례적으로 언론에 알리는 등 적극적인 모습도 보였다. 검찰 관계자는 “일단 조사에 변호인이 입회한 상태에서 이 전 대통령이 진술을 거부하면 묵비권 행사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피의자로서 당연한 권리”라며 ‘조사 무산’ 가능성에도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이 전 대통령이 묵비권 행사 이전에 조사 자체를 거부하면서 구치소 조사는 결국 무산됐다. 검찰은 오후 3시 30분쯤 “오늘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이 전대통령에 대한 피의자조사를 진행하려 했지만, 이 전대통령이 조사를 거부했다”며 “추후 다시 조사할 계획”이라고 알렸다. 신 부장검사가 접견실에서 이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 조사에 응해달라는 취지를 여러 차례 전달했지만, 이 전 대통령은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은 서면을 주고 독거실로 다시 들어갔다고 한다.
측근들은 천안함 참배…재판 앞두고 ‘보수 결집’ 분석도
이날 오전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천안함 폭침 8주기를 맞아 대전 유성구 국립현충원에서 천안함 46용사 묘역을 참배하고 이 전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조화를 헌화했다.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방명록에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해 적는다”라며 “몸은 같이 하지 못해도 여러분의 나라를 위한 희생을 기리는 마음은 언제까지 함께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 전 대통령은 “통일되는 그 날까지 매년 여러분을 찾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옥중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남기기도 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이 재판에서 검찰과 법리 공방을 벌일 것을 각오하고 본격적인 ‘여론전’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며 “측근들이 현충원을 참배한 것이나 ’옥중조사’에 불응한 것도 보수 세력 결집을 위한 메시지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