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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 찾아온 검찰 돌려보낸 MB…재판 앞둔 ‘여론전’ 해석도

중앙일보

입력

“오늘 발표할 게 있으니 12시 10분 사무실 앞에서 뵙는 걸로.”

26일 오전 11시 30분쯤 이명박(77) 전 대통령 측 강훈 변호사가 기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뇌물ㆍ횡령 등 혐의로 구속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구치소 방문조사를 2시간 30분 앞둔 시점이었다.

MB “검찰에게 공정한 수사 기대하기 무의미”

구속 수감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26일 검찰 방문 조사를 2시간 앞두고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무망하다"며 조사 거부 의사를 밝혔다. [공동취재단]

구속 수감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26일 검찰 방문 조사를 2시간 앞두고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무망하다"며 조사 거부 의사를 밝혔다. [공동취재단]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열림’ 사무실에 모인 기자들 앞에서 강훈 변호사는 준비해온 A4용지 한장짜리 발표문을 읽었다. “오전 이 전 대통령을 접견해 의논한 끝에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기로 했고 검찰에도 같은 의사를 전달했다.”

당초 검찰은 이날 오후 2시 이 전 대통령이 수감된 서울동부구치소로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 부장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다스 관련 의혹을 조사할 계획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를 차명 소유해 운영하고 이 회사에서 비자금ㆍ법인카드 등을 합쳐 350억원 가량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삼성에게 이건희 회장 사면을 대가로 다스 소송비 68억원을 대납하게 한 혐의도 있다.

예정대로 구치소 찾은 검찰, 독방에서 나오지 않은 MB

 이명박 전 대통령 측 강훈 변호사가 26일 오후 검찰 조사를 앞두고 낭독한 발표문.

이명박 전 대통령 측 강훈 변호사가 26일 오후 검찰 조사를 앞두고 낭독한 발표문.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조사에 불응하면서 조사는 무산됐다. 강훈 변호사는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며 조사 거부 이유를 설명했다. 강 변호사는 또 “전직 대통령으로서 법을 준수하는 차원에서 지난 소환조사에 응했다”며 “이 전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물으라고 여러 차례 천명했지만 검찰은 구속 후에도 주변 사람을 끊임없이 불러 조사하고, 일방적 피의사실도 무차별적으로 공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예정대로 오후 2시 이 전 대통령이 구속된 서울동부구치소로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냈다. 이 전 대통령을 설득해 조사를 이어나가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동부구치소로 출발한 차량 번호를 이례적으로 언론에 알리는 등 적극적인 모습도 보였다. 검찰 관계자는 “일단 조사에 변호인이 입회한 상태에서 이 전 대통령이 진술을 거부하면 묵비권 행사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피의자로서 당연한 권리”라며 ‘조사 무산’ 가능성에도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이 전 대통령이 묵비권 행사 이전에 조사 자체를 거부하면서 구치소 조사는 결국 무산됐다. 검찰은 오후 3시 30분쯤 “오늘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이 전대통령에 대한 피의자조사를 진행하려 했지만, 이 전대통령이 조사를 거부했다”며 “추후 다시 조사할 계획”이라고 알렸다. 신 부장검사가 접견실에서 이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 조사에 응해달라는 취지를 여러 차례 전달했지만, 이 전 대통령은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은 서면을 주고 독거실로 다시 들어갔다고 한다.

측근들은 천안함 참배…재판 앞두고 ‘보수 결집’ 분석도

천안함 폭침 8주기인 26일 오후 대전 현충원에 헌화된 이명박 전 대통령 명의의 화환. [이명박 전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천안함 폭침 8주기인 26일 오후 대전 현충원에 헌화된 이명박 전 대통령 명의의 화환. [이명박 전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이날 오전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천안함 폭침 8주기를 맞아 대전 유성구 국립현충원에서 천안함 46용사 묘역을 참배하고 이 전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조화를 헌화했다.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방명록에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해 적는다”라며 “몸은 같이 하지 못해도 여러분의 나라를 위한 희생을 기리는 마음은 언제까지 함께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 전 대통령은 “통일되는 그 날까지 매년 여러분을 찾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옥중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남기기도 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이 재판에서 검찰과 법리 공방을 벌일 것을 각오하고 본격적인 ‘여론전’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며 “측근들이 현충원을 참배한 것이나 ’옥중조사’에 불응한 것도 보수 세력 결집을 위한 메시지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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