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미세먼지 '회색 공포' 시달린 시민들…"가족들과 이민가고 싶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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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안경에 뭐가 묻은 줄 알았어요. 온통 잿빛인 하늘이 딱 지구 종말 영화 속 하늘 같아요.”

전국이 뿌연 회색 가스실…"한국서 못 살겠다, 이민가고 싶어"

25일 오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이 미세먼지로 회색빛이다. 우상조 기자

25일 오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이 미세먼지로 회색빛이다. 우상조 기자

25일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24)씨의 말이다. 많은 시민이 사흘째 이어지는 고농도 미세먼지 발 ‘회색 하늘’에 시각적인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한국환경공단의 ‘에어 코리아’에 따르면 25일 낮 12시 서울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1㎥당 104㎍(마이크로그램)이다. 미세먼지 예보 단계상 ‘매우 나쁨’에 해당한다. 경기도는 121㎍/㎥, 광주 116㎍/㎥, 충북 110㎍/㎥, 인천 107㎍/㎥ 등으로 전국 대부분이 ‘잿빛 공습’을 받고 있다. 한반도가 고기압 중심에 들면서 대기가 정체되고 있어 26일에도 미세먼지의 공습은 계속될 전망이다.

환경부는 미세먼지 대응 비상상황실을 운영하고, 전국 지자체에 ‘미세먼지 저감 긴급조치’를 시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정부 대책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물 많이 먹는 게 할 수 있는 전부”

서울 동작구에 사는 서모(66·여)씨는 매일 아침 자녀들로부터 미세먼지 농도가 적힌 문자를 받는다고 했다. 이날 아침에도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끼라”는 연락을 받았다는 서씨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굉장히 답답하다. 하지만 집에 와서 물을 많이 마시는 것 외에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세먼지가 어디서 얼마나 생기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데, 국가 차원의 대책이 정말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주희(23·여)씨는 “뉴스에서 미세먼지가 심하다고 해서 마스크를 쓰고 나왔는데도 지금 눈과 피부가 따갑다. 정말 큰 스트레스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공기가 맑은 국가로 이민을 가고 싶다”는 글들이 여럿 올라왔다. 한 시민은 “직장을 정리하고 캐나다나 호주로 이민을 가고 싶다. 공기가 삶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 크기 때문에, 농담이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적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못 살겠습니다. 살려주세요”“미세먼지로 한국 시민들을 죽이고 있는 중국의 미세먼지에 대한 외교적 대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주세요” 등의 글이 올라왔다.

유동 인구 줄어든 노량진…“미세먼지 때문에 장사 안돼”

이날 서울 노량진역 근처는 평소보다 눈에 띄게 유동 인구가 줄어든 모습이었다. 한 컵밥 가게 주인은 “미세먼지가 있으면 학생들도, 일반인들도 잘 오지 않는다. 오늘 고작 10개도 못 팔았다”고 말했다. 조영은(25·여)씨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밖에서 음식을 잘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아침에는 부모님이 마스크를 꼭 쓰라고 전화까지 하셔서 더욱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마스크 착용한 사람은 많지 않아

25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걷고 있다. 우상조 기자

25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걷고 있다. 우상조 기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날 오후 12시 반쯤 서울 수유역 근처 버스정류장에 있던 20여명의 시민 중 마스크를 쓴 사람은 2명이었다. 박모(51)씨는 “가까운 곳에 점심 약속이 있어 마스크를 쓰지 않고 나왔다. 근데 생각보다 미세먼지가 심각한 것 같아 내일부터는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송우영·정용환·정진호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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