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용광로 … 나라마다 꿈을 지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잔치는 시작됐다. 모두가 월드컵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지름 30㎝도 안 되는 축구공 하나로 지구촌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월드컵. 그 마법의 세계에 빠질 준비가 됐는가. 웰컴 투 풋볼!

◆ 브라질에선 …

산토스 클럽의 홈구장 앞 선술집에서 중년의 세 남자가 모여 앉았다.

주인인 세르지우 실바가 말했다. "브라질 대표팀 감독은 골치가 아플 것 같아. 좋은 공격수가 워낙 많아서 말이야. 산토스.코린티앙스.상파울루.팔메이라스, 이 네 팀 선수만 갖고도 대표팀 하나는 충분히 만들 수 있지. 전국에서 모으면 지금 같은 대표팀 5개는 만들 걸."

뚱뚱한 호드리구가 말을 받았다. "브라질 사람의 피에는 축구가 흐르고 있어. 나는 축구도 안 했고 이렇게 살도 쪘지만 유럽 선수하고 일대일로 붙으면 이길 자신이 있거든. 이번 월드컵도 구두 신고 축구 하지만 않으면 브라질이 우승이야." ('구두 신고 축구 한다'는 건 상대를 얕잡아보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뜻의 브라질 속담이다.)

조용히 듣고 있던 지아구가 취재진을 향해 말했다. "한국 사람 대단해요. 2002년에 몇 십만 명이 빨간 옷 입고 '대~한민국' 하는 것 보고는 소름이 끼치더라니까. 한국은 힘과 믿음으로 이겼으니까 독일에서도 잘할 겁니다."

◆ 아프리카에선 …

본선에 오른 5개국 중 4개국이 월드컵 첫 출전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프리카 대표로 멋진 경기를 보여주겠다"며 의욕에 차 있다.

가나축구협회 코피 은시아 사무총장은 "미국.체코.이탈리아와 함께 죽음의 조에 속했는데 괜찮겠느냐"는 질문에 "걱정 안 한다. 축구는 찬스의 게임이다. 2002 월드컵 개막전에서 세네갈이 프랑스를 이길 줄 누가 알았나"라고 대답했다. 첫 출전에서 8강 신화를 이룬 세네갈의 뒤를 잇겠다는 자신감이었다.

토고축구협회 아소그바비 코로 사무총장도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는 해외에서 뛰고 있는 뛰어난 선수가 많다. 한국과 스위스는 쉽게 이길 것 같고, 프랑스 하고는 역사적 관계도 있고(토고는 프랑스 식민지였다) 우리가 잘 알기 때문에 비기지 않을까. 그래서 토고와 프랑스가 16강에 갈 것 같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홍보위원장 아모르 구일라(이집트)는 "월드컵에 네 번째 나서는 튀니지에 좋은 성적을 기대한다. 토고나 앙골라 같은 2류 팀(second line)이 본선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주지 못하면 아프리카 축구가 퇴보했다는 소리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 독일에선 …

프랑크푸르트.라이프치히.하노버에서 만난 대회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은 거의 모두 "독일이 결승까지 갈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지난 대회에서 '약체'라는 평가 속에도 결승에 올랐으니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결승까지 가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는 계산이다. 독일 축구 팬도 같은 생각이다. 마인츠 지방 세무청에서 일하는 산드라 베버는 "내 할머니는 올해 75세인데 '살아서 월드컵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결승전 티켓을 일찌감치 예매했어요. 할머니가 결승전에서 독일 선수들을 볼 수 있겠죠"라고 말했다. 한국-스위스전이 열리는 하노버시의 월드컵 총책임자 클라우스 티마우스는 "우리는 약 4000명의 한국 응원단이 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유럽의 훌리건과 달리 한국 팬들은 질서를 지키며 응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월드컵 기간에 하노버는 축제의 장이 될 겁니다. 한국의 사물놀이와 스위스의 뿔나팔 소리가 섞이면 귀가 먹먹하겠죠"라며 활짝 웃었다.

브라질.이집트.가나.토고=정영재 기자,

독일=홍은아 통신원, 사진=박종근.김태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