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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80년 서울의 여름<1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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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권력형 비리 수사결과에 대한 일반의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한 계엄사는 연행 46일만인 7월2일 구여권인사들을 귀가시켰다.
그러나 소요 배후조종 혐의로 연행된 김대중씨등 재야인사들은「내란음모죄」로 걸려 이루 말할수 없는 고초를 겪고 있었다(7월31일 24명이 군재에 회부).
5·17을 계기로 확실한「목표」를 세운 신군부는「새시대」개막에 방해가 될 존재들에 대해 철퇴를 가해나갔다.
재야는 그런 점에서 철저히 파괴해 더이상「대들기」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주인을 잃고 권력도, 돈도, 명예도 다 앗긴채 쓰러진 구여권에 대해선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주야와는 다른 이들에겐 그정도로 충분하다고 판단했고, 또 나머지인사들의 정리를 위한 방과 손이 필요했던 것도 방면의 한 이유였는지 모른다.
『검은 승용차에 탄 김종필씨는 보도진을 피해 자택 차고 안까지 막바로 들어갔읍니다. 차에서 내리는 초췌한 모습의 김씨에게 기다리던 가족들이 검정색 새 구두를 바꿔 신기더군요. 끈이 없는…. 그리고 두부를 발 아래에 가져다 놓고는 밟도록 했읍니다. 다시는 이런 변고가 없도록 해달라고 기원하는 액막이 풍습이었지요.』김씨의 청구동 자택 귀가 순간을 지켜본 장남원기자 (현재 중앙일보근무) 의 스케치.
모두들 날개를 잘린채 야인으로 돌아갔다. 굳이 감시할 필요가 없는데도 요원들을 배치한게「보통의」야인들과 달랐다.
재산은 깡그리 빼앗긴 것으로 돼있으나 계엄사는 먹고살 정도의 배려를 잊지 않았고 따라서 당장의 호구지책까지 걱정할 처지는 아니었다. 예전같지는 않더라도….
『대략 3억∼5억원어치는 남겨둔 것으로 압니다. 연행당시 살던 집과 본인이 원하는 약간의 부동산 또는 예금을 돌려줬으니까요.』보안사 관계자의 설명.
김종필씨는 최근『그렇게는 아니고 2억원을 나눠주더라』고 했다.
당시 연행됐던 인사들은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면서도 집안의 가재 도구·기념품·옷감까지 쓸어갔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계엄사 관계자들은 숨겨놓은 것으로도 먹고 즐기는데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사전조사가 아무래도 미흡했고 시간에 쫓겨 충분한 수사를 못했기 때문에 익명으로 감춰둔 재산등에 대해서는 추적을 못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상당한 재산을 숨겨두고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정보팀이 수사단장 이학봉대령에게 넘겨준 자료 자체가 너무 빈약 했읍니다. 오래 전부터 정보를 수집했다고는 하지만 소문난 것에 대한 확인정도였지 타인명의 등으로 분산·은닉시킨 것을 찾아내기는 어려웠읍니다. 수사시일도 촉박했고요. 그리고 이미 드러나 확인된 사실만으로도 국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으니까요.』(보안사 출신 Y씨)
『치밀한 준비였다고는 할수 없읍니다. 그래서 뒷마무리도 허술할 수밖에 없었읍니다. 원래 뿌리가 깊은 거물들인지라 그 와중에서도 여기저기서「그 정도로 봐주라」는 청탁이 들어왔고 그러다보니 재산환수는 제대로 안됐지요.』(당시 계엄사 파견 L검사)
다른 한 관계자는 그래도 최선은 다한 것이라며 정보 입수 과정에서 조사 대상자의 하급자를 주정보수집원으로 하는 바람에 그들이 아랫사람의 눈치를 보는 이상한 풍조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여하튼 구여권인사들이 바깥 공기를 쐬게될 무렵의 세상은 크게 변하고 있었다.
국가권력의 거의 모든 부문을 장악한 신군부는 최규하대통령이 국가 기강 확립을 위한 6·12담화를 내는 것과 함께 내막이야 어떻든「도의정치」와「사회정의」구현을 위한 작업에 열을 올렸다.
제1차 대상자로 지목됐다가 몸을 피해버린 오치성전내무장관과 국기문란 혐의를 받은 이룡희의원 (신민당) 은 수배중이었다 (오씨에 대해서는 미국 도피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제5공화국 중반까지 서울은마아파트에 잠적하고 있었으며 지난총선때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또 박종률전의원 (김대중씨 비서실장) 장을병교수 (성대) 이협씨 (김대중씨 공보비서·현의원)등 정치인·교수·목사·언론인·학생등 3백27명도 국기 문란, 시위 주모및 배후 조종, 광주사태 관련 유인물 제작·살포등 혐의로 지명수배됐다 (6월17일 발표).
이와함께 국보위는 민원실을 설치, 민심을 파악하고 정화자료등을 수집한다며 나라안을 투서·고발등 온통 밀고체제로 몰아 넣었으며 중앙정보부 요원 3백여명의 숙정에 이은 유사이래 최대의 공직자 정화작업이 진행돼 많은 사람들이 불안 속에 날을 보냈다. 한여름인데도 찬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때였다.
그런 가운데 계엄사는 정치인에 대한 제2차 조사를 했다. 이미 예고된 마무리 작업이었다. 1차는 유형별로 대표적인 인물에 한정시킨 것이라며 이들과 비슷한 다른 부정축재자들은 자수하라고 경고했던만큼 하등 새삼스런 것은 아니었다.
『5·17이전 이미 선정됐던 사람들입니다. 1차때 축재 규모가 큰 거물들을 치리하고 다음으로 나머지 중진급들을 손보게된거죠.』
『당초 거론된 몇사람은 중간 내사과정에서 제외됐고 나중에 투서가 들어와 새로 추가된 인사도 있읍니다. 수사가 공개되면서 투서가 들어와 새로 추가된 인사도 있읍니다. 수사가 공개되면서 투서도 꽤 많았으니까요.』
그러나 일각에서는『해당자 본인들의 비리도 간과할수는 없었지만 먼저「없어져」줘야할 인물들을 결정하고 뒤따라 죄상을 적시하는 방법으로 진행했다. 특히 야당인사들의 경우 그랬던 것 같다』고 지적한다.
공무원 숙정에 이은 국영기업체 숙정이 끝나는 단계에 있던 7월18일 계엄사는 전직장관 3명과 여야의원 14명등 17명을 전격 연행했다.「정치적 비리와 부패행위로 국가기강을 문란시킨」혐의로 연행된 인사들은▲김현옥 (내무) 구자춘(내무) 고재일(건설) 씨등 전직각료 3명▲길전식·구태회·김용태·신형식·장영순·현오봉씨등 공화당소속 의원6명▲정해영·고흥문·박해충·박영록·김수한·최형우·김동영·송원영씨등 신민당소속의원 8명등이었다.
계엄사는『이들 정계·관계 저명인사들이 그동안 정치권력과 영향력을 악용, 정치풍토를 더럽혔을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기강을 문란케해온 장본인들』이라고 매도하면서『그동안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줘왔으나 부정재산의 자진 헌납이나 위화감 해소를 위한 노력에 소홀, 국민의 지탄을 받아왔기 때문에 지난 6월18일 단행했던 권력형 부정축재자및 고급공무원 숙정과 같은 차원에서 정치풍토 개선과 사회기강 확립을 위해 연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전두환장군 지지」「한국, 새 시대의 지도자 필요」라는 일련의 보도가 나도는 가운데 막바지 정치작업으로 추진된만큼 연행된 인사들, 특히 야당인사들에 대한 계엄사의 조치는 가혹했다.
설사 새 공화국 출범과 무관하더라도 1차 대상자 발표때 보여준 국민들의 환호와 성원이 관계자들을 한층 고무시켰으므로 그럴 가능성은 충분했다.
『참고인으로 치안본부 특수수사대에 호출됐던 때입니다. 열린 문 사이로 보니 P의원(신민당)이 마구 얻어터지고 있었읍니다. 잔뜩 겁을 먹은채 J의원이 조사받는 방으로 갔읍니다. J의원이 수사관의 말을 부인하기기 무섭게 주먹과 발길이 날아들며 10여분간 계속됐읍니다. 그래도 분이 덜 풀렸는지 의자를 들어 내리치더군요.』당시 한 야당의원에 대한 증언을 위해 수사기관에 나갔던 C씨의 회고다.
『본인들에게 문제가 많았다는 것은 분명해요. 5월17일 권력형 부정축재자들이 연행되고 수사결과가 발표되자 위기를 느낀 이들은 교묘히 재산을 은닉하려 했읍니다. 때문에 수사에 애로가 많았어요.』계엄사측의 얘기다.
그런 과정을 거쳐 연행 1개월만에 발표된 수사결과 내용은 구구절절 구정치의 타락·부패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런 것들이었다.「7억원 수뇌」「불법 세무사찰로 돈뜯어」「7공자의 아버지」「법령까지 개정, 이권 개입」「특혜금융 알선, 12억 수뢰」「돈받고 인사」「탈세로 번돈 정치자금에」「접대부를 첩으로 남매 출산」「정부 공격 미끼 10억 챙겨」「도시계획 탐지, 축재에 이용」「여고생 농락, 엽색행각」등 온갖 추태가 망라되어 있었다.
국민들은 이렇게 치사하고 더러운 협잡배들을 정치 지도자로 알고 살아왔으며 따라서 새로운 도덕적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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