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733대 팔린 수소차, 올해 보조금 예산 240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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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3대. 현대자동차가 19일 하루 동안 국내에서 신형 수소차 ‘넥쏘’를 예약 판매한 수치다. 올해 환경부가 책정한 수소차 보조금 예산 158대분의 4배가 넘는다. 한 번 충전에 609㎞를 달릴 만큼 기술력이 갖춰졌고, 보조금을 받으면 3390만원에 구매할 수 있는 장점에 너도나도 구매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수소차를 ‘달리는 수소 폭탄’ 정도로 여기는 소비자 인식을 이유로 수소 인프라 확대 정책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수소차 판매가 흥행을 보이면서 공은 정부로 넘어오게 됐다. 당장 소비자들이 수소차를 구매해도 보조금을 받지 못하거나 충전소가 없어 운행할 수 없는 불상사가 예고된다.

정부·지자체 안이한 수소차 정책 #현대 ‘넥쏘’ 예약판매 예상 밖 인기 #충전소는 서울 포함 전국에 12곳 #미국·독일 충전 인프라 먼저 구축 #전기차로 몰린 예산·지원 분산해야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2015년 확정한 ‘제3차 환경친화적 자동차 개발 및 보급 기본계획(2016~2020년)’에 따르면 올해 수소차 보급 누적 목표치는 2500대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에선 총 177대의 수소차가 팔렸기 때문에 하루 만에 733대가 예약 판매되는 속도가 유지되면 이 같은 목표는 충분히 달성할 만하다는 게 자동차 업계의 관측이다. 그러나 올해 환경부에서 수소차 보조금에 배정한 예산은 지난해 이월된 예산을 모두 끌어와도 240대(1대당 2250만원)에 그친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예산을 늘리기 힘든 구조다. 서울·울산 등 지자체도 자체 예산으로 1000만~1250만원대 보조금을 책정하고는 있지만, 배정 차량은 예약 판매 대수에 턱없이 미달한다. 서울시가 올해 편성한 수소차 보조금은 총 4대분(민간 3대, 공공 1대)에 그친다. 나머지 고객은 보조금 없이 2배가 넘는 가격(6890만원)에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예약 고객이 구매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판매할 수 있는 넥쏘 수량은 240대에 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 시급한 건 수소 충전소 인프라다. 19일 예약 구매한 넥쏘 고객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서울 227대, 울산 238대, 광주 156대, 창원 78대, 기타 34대 등이다. 그러나 민간에 개방된 충전소 인프라는 서울 2곳, 울산 2곳, 광주 1곳, 창원 1곳 등 12곳에 불과하다. 고객이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서울시가 관리하는 상암동 수소 충전소는 올해 초부터 노후화한 충전소 부품(열교환기) 교체 작업이 진행 중이라 현재 이용할 수 없는 상태다. 이종혁 서울시 그린카보급팀장은 “상암 수소 충전소의 경우 부품 교체 작업이 끝나는 4월 이후에는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 서울시 안에선 충전소를 더 늘릴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수소차 산업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리에 빠져 속도를 내지 못했다. 자동차 제조사는 ‘충전소 부족’을, 충전소 사업자는 ‘수소차 부족’을 이유로 사업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독일과 일본,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 수소차 선진국들은 충전소 인프라 구축을 우선시했지만 한국은 달랐다. 수소차는 세계 최초로 개발했지만 인프라 확장은 후순위였다. 이 때문에 차량은 팔리는데, 충전 인프라는 없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권성욱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 실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주 정부와 민간 기업이 자본금 3대 1 비율로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충전소 인프라 사업을 벌인 결과 지난해 말 기준 4000대가 넘는 수소차가 보급됐다”며 “한국 정부도 민간 충전소 사업자와의 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목표로 한 ‘2022년 수소차 1만5000대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전기차 확대에 집중된 예산을 수소차 인프라에도 활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당장 거액의 예산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올해 정부 예산의 전기차 지원분(2600여억원) 중 일부를 수소 인프라 확충에 쓰는 방법이다. 국내 소비자들이 막상 수소차를 구매했다가 불편함만 부각되면 정부가 목표를 이루기도 전에 좌절될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물이 들어온 이때가 노를 저어야 할 적기란 의미다.

조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력·신재생 발전 비중이 높은 유럽에선 전기차가 친환경적이지만, 국내에선 전기를 생산할 때 화력·원자력 발전 비중이 커 전기차가 환경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불확실하다”며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필요한 수소차 산업을 육성하는 쪽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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