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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페이스북 계속 써도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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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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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라는 물리적 공간 위에 발 붙이고 사는 동시에 페이스북이라는 가상공간 속에 산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21억 명이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으니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페이스북에 살아도 안전한 것일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만 보면 많은 사람들은 이미 '아니오'라고 답을 정한 것 같다.
주식을 내던져 페이스북이 18일(현지시간) 하루 새 미 증시에서 네이버와 카카오 시총을 합한 것만큼인 364억 달러(39조원)나 까먹게 만들었고,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그토록 집착하는 가입자 수 역시 흔들어놓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선 벌써 미투(#metoo) 캠페인처럼 페이스북을 탈퇴하자는 #deletefacebook 움직임이 막 불 붙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deletefacebook 내용을 실은 테크 크런치의 페이스북 포스팅. [사진 페이스북 캡처]

#deletefacebook 내용을 실은 테크 크런치의 페이스북 포스팅. [사진 페이스북 캡처]

뭐가 문제였을까. 사건의 발단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런던의 데이터 기반 컨설팅 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는 우리가 페이스북에서 흔히 접하는 성격 테스트 형식을 빌려 무려 5000만 명의 페이스북 이용자 개인 정보를 빼낸 후 영국 브렉시트 투표와 미국 대선 향방을 바꿔놓는 정보심리전을 펼쳤다. 문제는 단순한 정보유출이 아니라 '페이스북이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점이다. 지난 주말 영국 가디언은 내부고발자의 이같은 증언을 담아 내보냈다. 페이스북은 몰랐다고 발뺌하며 17일에야 뒤늦게 CA의 페이스북 계정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용자의 신뢰를 배반한 죗값을 지금 치르고 있다.
사실 이용자 개인정보를 활용한 '은밀한 알고리즘'을 통해 페이스북이 민감한 여론의 향방까지 쥐락펴락한다는 건 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월가를 거쳐 IT업계에 종사했던 하버드대 수학박사 출신 캐시 오닐이 쓴 『대량살상 수학무기』에도 비슷한 사례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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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미 대선 당시 정치적 성향이 강한 200만 명을 임의로 선정해 정치 뉴스를 지속적으로 노출했더니 투표 참여율이 비 실험대상자에 비해 3%나 더 높았다는 자체 실험 결과 내용이다. 페이스북이 마음만 먹으면 알고리즘 조작으로 특정 정당이나 대통령까지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가설만으로도 많은 독자를 섬뜩하게 했다. 그런데 CA는 이 음흉한 가정을 정말 현실 정치판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내부고발자인 크리스토퍼 와일리는 2014년에도 트럼프 정부 초기 수석 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의 극우매체 브레이트바트에서 배넌과 함께 페이스북 이용자 개인정보를 빼내 여러 심리전을 펼쳤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미국과 영국 의회가 저커버그를 진상 조사 청문회에 출석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는 만큼 페이스북은 이용자의 분노뿐 아니라 정치적 시련도 감당해야할 상황에 맞닥뜨렸다.

페이스북 스캔들 이후 침묵을 지키고 있는 저커버그를 다룬 가디언의 페이스북 포스팅. [사진 페이스북 캡처]

페이스북 스캔들 이후 침묵을 지키고 있는 저커버그를 다룬 가디언의 페이스북 포스팅. [사진 페이스북 캡처]

이 위기가 페이스북의 좌초로까지 이어질지, 아니면 중독성 강한 미디어답게 살아남을지 궁금하다. 사족이지만 페이스북의 비밀을 폭로하는 가디언 기사를 나는 계속 페이스북을 통해 읽고 있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