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구글은 자체 댓글창 없는데 … 네이버는 순위 매겨 경쟁 조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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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이대론 안 된다 <하> 

“안타깝지만 댓글은 진화를 멈췄다. 우리가 댓글을 일일이 관리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양질의 댓글과 독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보여주는 코너 ‘픽스’를 내놓으면서 이렇게 발표했다. 비방·욕설로 가득 찬 악의적인 댓글을 걸러낼 수 없다고 판단한 NYT는 전체 기사의 10%를 제외한 모든 기사의 댓글 창을 모두 없앴다. 독자들의 우수한 의견을 보여주는 ‘픽스’는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다른 언론사에 남긴 의견들까지도 취합한다.

구글, 뉴스 클릭 땐 언론사 홈피 연결 #야후, 댓글 단 사람 이전 글도 공개 #NYT, 악플 자동삭제 프로그램 운영 #네이버, 댓글 폐해 알면서도 방치 #“뉴스 댓글 폐지” 자문위 의견 무시

‘픽스’ 내 ‘총기 규제에 대한 좌우 의견 대립’ 댓글 모음을 누르니 허핑턴포스트·트위터 등에 나온 의견이 총기 규제 찬성·반대·중립 순으로 정리돼 있었다. 여기에 새로운 의견을 내고 싶으면 뉴욕타임스에 e메일을 보내면 된다. NYT는 머신 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 ‘퍼스펙티브’도 도입해 악플을 자동으로 삭제하고 있다.

세계 최대 검색 엔진 구글과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에서는 뉴스 기사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 페이지로 넘어간다. 기사를 읽고 의견을 내고 싶으면 해당 언론사 사이트에 달라는 것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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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두·빙·msn 등 외국 포털과 언론사들이 난립하는 댓글 창을 없애는 등 강력한 대책을 취하고 있지만 국내 포털들은 우유부단한 정책으로 악플 문제를 되레 키우고 있다. 포털 기업들은 댓글의 부작용이 대두할 때마다 수시로 정책을 바꿨지만 극단적인 악플 문제는 더욱 심해지는 양상이다. 뉴스 페이지가 언론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플랫폼으로서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네이버는 2004년 뉴스 아래 댓글 기능을 처음 도입했다. 이후 댓글이 여론 형성에 큰 역할을 하는 등 ‘댓글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영향력이 커지자 네이버는 댓글 정책을 수시로 변경해왔다.

지난해 11월 말 네이버는 댓글 정렬 기준에서 ‘호감 순’을 조용히 뺐다. ‘호감 순’은 댓글에서 ‘공감’을 받은 수에서 일정 비율의 ‘비공감’ 횟수를 뺀 순서대로 댓글을 정렬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문제는 ‘호감 순’이 단순히 공감에서 비공감을 뺀 수치로 책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네이버 측은 “‘비공감’을 누르는 것이 더 적극적인 행동이라서 가중치를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국감에서는 “애매모호한 댓글 정렬 기준에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네이버는 한 달 만에 ‘호감 순’을 없앴다.

지난해 6월부터 도입된 ‘댓글 접기’ 기능도 문제다. 댓글 접기 기능이란 특정 댓글 아래 ‘접기 요청’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일정 수 이상이 되면 댓글이 영구적으로 접히는 것이다.

이 기능은 욕설, 광고 등 뉴스 서비스 댓글로 적절하지 않은 댓글을 차단하는 게 주목적이다. 그러나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정치·이념적으로 본인과 맞지 않는 댓글에 ‘접기 요청’을 해 입맛에 맞는 댓글만 살리는 용도로 쓰이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애매한 뉴스 댓글 정책은 네이버 ‘뉴스 편집 자문위원회’에서도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 언론학자, 여야 정당에서 추천한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네이버가 뉴스 기사 배열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독립 기구다. 자문위에서는 “댓글 접기 기능을 없애야 한다” “뉴스 댓글 기능을 아예 없애야 한다” 등의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사생활 보호 때문이라고 하지만 댓글 단 사람의 ID 뒤 네 글자를 숨기는 것과 그 사람이 이전에 달았던 댓글 모음도 비공개로 할 수 있는 것도 문제다. 포털 뉴스 화면에서 매크로 프로그램(키 입력 등 같은 행동을 반복해 실행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댓글 조작이 가능하다는 의심을 받게 된 것도 이 같은 ‘깜깜이 정책’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문제는 포털 ‘다음’도 마찬가지다. 네이버에서는 댓글을 달 때 무조건 자신의 아이디 뒤 네 글자를 제외하고 모두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다음’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닉네임(별명)을 설정해 댓글을 쓸 수 있다. 자신의 댓글이 논란이 되면 닉네임만 바꾸면 되는 만큼 익명성이 더욱 보장되는 것이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뉴스 댓글 서비스에 대해 다시 검토하고 있다”며 현행 댓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시인했다. 네이버는 8월까지 일반인들로 구성된 ‘네이버 댓글 패널’들의 의견을 취합해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네이버 관계자는 “이용자들의 표현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입장”이라며 “일각에서 주장하는 뉴스 서비스에서 댓글 서비스를 폐지하는 방안 등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광일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소수의 사람이 올리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댓글에 우리 사회가 흔들리지 않는 방안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며 “포털과 언론사들이 해외 사례를 참고해 댓글 문제를 방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김민상·임선영·하선영·김준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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