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우리가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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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6공화정 들어 처음 맞는「현충일」은 별다른 감회를 안겨 준다.
오늘 전 국민이 고개 숙여 봉헌하는 애국 열사들은 주로 일제로부터의 조국독립을 위해 싸웠거나 국제 공산주의로부터 민주 공화 체제를 지키기 위해 앞장섰고 집권 독재세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고 되찾기 위해 궐기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생명을 던지고 피를 흘린 대가로 우리는 지금 독립정부를 세우고 공산주의 위협을 극복하면서 민주화의 길에 들어서 있다.
그러나 애국 선열들의 유지가 이 땅에 제대로 실현됐다고는 볼 수 없다. 지금의 우리 상대는 그들의 뜻과는 아직도 먼 거리에 있음을 숨길 수 없다.
일제를 축출하고 독립을 쟁취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분열된 상태에서 세계 열강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아직도 우리 조국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주인이 됐다고 볼 수도 없다.
공산주의 위협을 극복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북반부에는 아직도 남한의 공산화 목표를 버리지 않고 기회만 노리는 공산주의 세력이 포진하고 있다. 그들은 사사건건 우리 내정을 넘보면서 발전을 방해하고 있다. 소련·중공과도 아직 원만한 관계를 이루지 못한 채 잠재적인 위협을 느껴야만 한다.
6·29이후 민주화의 장정에 올랐다고 하지만 민주주의에 도달키위해서는 넘어야 할 고비가 너무나 많다. 민주화의 순항을 위협할지 모를 만만찮은 세력이 우와 좌에 도사리고 있다.
이처럼 선열들의 유지가 아직도 완전히 꽃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살아 있는 우리가 할 일을 못했거나 해선 안될 일을 저지른 데 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반성하고 결의를 새로이 다짐해야 할 일이다.
애국선열에 대한 참된 보 훈의 길은 물질적으로만 해결될 수는 없는 일이다. 상이 자의 원호나 유족에 대한 지원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 그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독립과 안전의 혜택을 누리는 오늘 이 세대의 지도층들이 참된 애국심을 가지고 선열의 유지를 받들어 헌신하는 것에서 비로소 참된 보 훈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새 정부는 보훈 대상자의 범위를 재조정할 책무도 지니고 있다. 보훈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훈 대상자의 정확한 사정이다. 무자격자가 선열의 반열에 올라 있거나 유자격자가 열외에 방치되는 것도 응분의 처사가 못된다.
지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근 20년간 민주화를 위해 몸을 바친 수많은 청년들에 대한 평가 문제다. 광주희 생자의 경우 제6공화정 정부는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화의 희생자들은 4·19 피해자들과 같은 선에서 예우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 72년의「10월 정변」(유신) 이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청년, 학생들의 실적을 엄밀히 조사, 평가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새 의회와 정부는 결코 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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