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란과함께하는명사들의시조] 해설 필요없도록 쉽지만 진한 감동과 여운이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금아(琴兒) 피천득(96) 선생은 영문학자.수필가.시인으로 우리 시대 최고의 원로 문인이다. 그의 시문에는 읽어서 모를 말이 없어 해설이 필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선생 특유의 절제된 언어와 정서의 여유, 감동과 여운이 있다는 사실이다.

'꽃씨와 도둑'이란 시를 보자. '마당에 꽃이/많이 피었구나//방에는/책들만 있구나//가을에 와서/꽃씨나 가져가야지'. 친구 공부방에 들른 나. 친구는 없고, 마당 가득 핀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차마 책은 못 훔치겠고, 훗날 꽃씨나 가져갈까 혼자 중얼거린다. 간결한 아름다움이 시구마다 빛난다. 이와 같은 간결미는 시조와의 오랜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1925년 이은상과 알게 되면서부터 선생은 3장 6구에 사랑과 그리움의 서정을 담아왔다. '진달래'도 그때 작품이다. 함께 눈을 맞으며 오르던 산에 혼자 올라 곱게 핀 진달래를 본다. '봄이 오면' 오마 하고, 새끼손가락 건 임은 진달래 피어도 오지 않는다. 그리하여 '진달래가 피었소' 하고, 없는 임을 부르는 것이다. 예의 어려운 데 없이 환히 들어오는 작품이다.

선생에게는 세 여인이 있었다. 딸 서영이와 어머니 그리고 아사코. '열일곱 되던 봄'에 시작된 아사코와의 세 번의 만남은 수필 '인연'을 통해 널리 알려진 대로다. 웃는 얼굴에 눈이 예쁜 그녀는 당시 선생이 유숙하던 도쿄의 사회교육가 미우라의 딸이었다. 선생을 오빠같이 따랐던 그녀는 '아사코 같이 어리고 귀여운' 스위트피 꽃을 선생의 책상 위에 놓아주곤 했다. 도쿄를 떠나던 날엔 선생의 '목을 안고 뺨에 입을 맞추고' 손수건과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십여 년 뒤 미우라 댁을 찾았을 때 아사코는 여대생이었다. 헤어지기 전날 산책길에서 연두색 우산을 든 그녀를 보고, 영화 '쉘부르의 우산'을 선생은 그렇게 좋아하게 되었다. 1954년 미국 가던 길에 선생은 도쿄에 들른다. 그녀는 결혼을 해서,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이 있는 집에 살고 있었다. 선생이 준 동화책 겉장 그림을 보고, 어린 아사코가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자던 작은 집이었다. 그때의 아쉬움을 선생은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고 적었다.

선생의 '서정시집'에 실린 18수의 연시조 '금아연가'마지막 수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훗날 잊혀지면 생각하려 아니하리/이따금 생각나면 잊으려도 아니하리/어디서 다시 만나면 잘 사는가 하리라.'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와의 '헤지지 않아도 되었을' 마지막 이별을 노래하는 듯하여 자꾸 돌아보게 된다.

홍성란 <시조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