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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에너지 쓰겠다며 환경파괴? 우후죽순 풍력단지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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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군 양구리풍력단지. [사진 환경부]

경북 영양군 양구리풍력단지. [사진 환경부]

 15일 경북 영양군 영양읍 양구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풍력 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능선을 따라 수십 기의 풍력 발전기가 마을을 에워싸고 있다. 산길을 따라 오르니 머리 위에서 100m 높이의 풍력 발전기가 ‘웅웅’ 소리를 내면서 돌고 있었다.

봉우리에 오르자 넓게 파인 길 위로 공사 자재들이 놓여 있었다. 멸종위기 2급 보호종인 수리부엉이가 인근에서 발견되는 등 환경 파괴 문제가 제기되면서 이곳은 지난해 11월부터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현재 전체 22기 중에서 1~11호기만 건설돼 시범 운행되고 있다. 안전그물이 쳐진 경사면 아래로는 과수원과 민가들이 보였다.

산 아래 홍계리에 사는 주민 박충락(68) 씨는 “주민들의 수호 산인 주산에 풍력 발전소를 짓는다면서 나무를 다 잘라버렸다”며 “공사를 하면서 돌덩이가 마을까지 굴러떨어진 적이 있을 정도로 산사태 위험이 커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대규모 풍력 단지 건설로 주민과 갈등 

환경 파괴 논란으로 공사가 중단된 경북 영양군 양구리풍력단지. [사진 환경부]

환경 파괴 논란으로 공사가 중단된 경북 영양군 양구리풍력단지. [사진 환경부]

경북 영양군은 ‘육지 위의 섬’으로 불릴 정도로 산악 지형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지로 꼽힌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대규모 풍력 단지가 건설되기 시작하면서 주민과 갈등을 일으켜 왔다. 에너지 전환과 자연환경 보전을 놓고 녹색 대(對) 녹색의 가치가 충돌한 셈이다.

현재 영양군에는 공사가 중단된 양구리 풍력단지뿐 아니라, 영양풍력, GS풍력 등 대규모 풍력단지가 가동(2곳 59기)되고 있거나 공사(2곳 27기) 중이며, 추가 입지를 위한 행정절차가 진행 중(1곳 15기)인 곳도 있다. 영양군 관계자는 “영양의 바람 조건이 풍력 발전을 하는 데 다른 어떤 지역보다 사업성이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련 업체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양군 주민들은 대규모 풍력 단지 건설로 환경이 훼손되고, 주민들도 소음 등의 피해를 당하고 있다면서 건설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석보면에서 양봉업을 하는 안효종 씨는 “2008년 동네에 풍력발전소가 처음 생긴 뒤부터 벌과 고추잠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지금은 반딧불이도 거의 사라졌다”고 호소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육상에 건설되는 풍력 발전소는 풍속이 초당 7m가 넘는 산악 지역이 많은 강원ㆍ경북ㆍ전남ㆍ제주 지역에 88%가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특히, 지난해 8월 기준으로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완료된 전체 풍력 발전소 71개소 중 40%가량인 29개소가 백두대간이나 자연보호 가치가 높은 생태ㆍ자연도 1등급지 등이 포함돼 있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진입 도로, 송전선로로 인한 환경ㆍ경관 훼손, 소음ㆍ저주파 등 생활 건강 피해에 대한 우려도 크다.

사업 허가 전에 환경영향평가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주변 풍력발전단지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주변 풍력발전단지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풍력 발전소 건설을 둘러싸고 예기치 못한 환경파괴 논란이 불거지면서 정부의 대체에너지 확대 정책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정부는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통해 2016년 기준 전체 발전량의 7%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풍력발전의 경우 2016년 기준 1.2GW(기가와트)에서 14배가 넘는 17.1GW까지 발전량을 늘려야 한다.

주민들의 반발이 커지자 환경부는 앞으로 육상 풍력발전 사업을 허가하기 전에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하고 그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기로 했다.

이날 양구리 풍력단지를 방문한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주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현재는 산업통상자원부가 풍력발전에 대한 사업허가를 내준 뒤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는데 순서를 바꿔 사업허가 내주기 전에 환경영향평가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풍력산업협회 측은 “환경부가 공개적으로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방향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마치 풍력발전이 설치 지역마다 생태우수지역을 파괴하는 시설인 것처럼 풍력발전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환경 훼손 우려가 적으면서 바람 세기가 좋은 지역에 대한 입지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김 장관은 “환경적으로 덜 민감하면서 풍력보급이 가능한 지역을 중심으로 우선 입지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양=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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