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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잠」깨는 "도래인"|후지노키고분 피장자는 누군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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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5면

후지노키(등??목) 고분의 석관에 묻혀있는 인물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임에는 거의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삼국시대 백제계 인물이냐, 신라계인물이냐에 대해 일본학계의 의견이 확연히 나누어지고 있다.
최근에 발견된 『구도신사제신고』(김달수씨 소장)에 따르면 수수께끼의 인물은 백제의 왕손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이 문헌에 따르면 고구려 담징이 그린 벽화로 유명한 법륭사에는 다음과같은 글이 새겨진 관음상동패가 보관되어있다.「족대원박사백제재옥차토왕성」. 즉 『대원 (오하라) 박사 일족은 백제의 왕으로 있었으며 이땅에서 왕의 성을 가졌다』고 되어있다. 이동패의 다른 한쪽에는 현재 후지노키고분이 발굴된지명 상(이카루가·나중에 반구로 바뀜) 와 백제의 왕족들이 살았던 왕사의 지명 및 서기 611년을 가리키는 갑오년이라는 간지도 기록되어있다.
「오하라」박사가 백제에서 왔다는 것을 극명하게 밝힌 사람은 1935년 일본의 신학자이며 역사학자인 「히고」(비후화남) 씨다.
「히고」씨는 법륭사의 동패에 새겨진 글을 인용하면서 현재 후지노키고분 근처에 있는 구도신사는 백제 6대왕 근구수왕을 제사지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근구수왕의 왕손들이 나량에 살면서 선왕인 근구수왕을 추모하기 의해 구도라는 신사를 만들었으며 그들이 이 지역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는 것. 근구수라는 이름은 나중에 구도→구도로 변형되어 구도신사로 현존하고 있다.
백제의 왕이 살았다고 해서 왕사로 불린 현재의 지명은 법륭사 동패에도 기록되어 있다. 법륭사와 왕사 및 구도신사는 모두 걸어서 5분거리에 있으며 후지노키고분은 이들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일본의 학자들은 후지노키고분이 백제 근구수왕의 후손인「오하라」 (대원 또는 대원사)라고 내놓고 이야기하기를 꺼려한다. 그러나「히고」씨는 그의 저술에서 백제왕손이 일본에 귀화해 대원사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2년여동안 이 고분의 부장품을 조사해온 「가스베」씨 (승부명생·강원고고학연구소 부속박물관차장)는『말안장의 전륜이나 후륜의 투각을 자세히 보면 고대 조선의 백제것으로 볼수있다』고 밝히고 있다.
85년 후지노키 고분이 발굴된 이후 피장자의 신분에대해 연구해온 김달수 (재일소설가·한일고대사연구가) 씨는 『관뚜껑을 열어 보아야 알겠으나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로는 백제왕족이 묻혔음이 거의 확실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가지 문헌이 있으며 당시부터 현재까지 계속사용되어온 지명에서도 이를 엿볼수 있다』고 설명했다.
후지노키 고분 피장자의 신라인설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역사소설가인「구로이와」(흑암중오) 씨가있다. 그는 백제 도래인인「소가」(소아도목)와 대립관계에있는 신라계의 「모노노베」(물부미여) 등이 이 일대에서 세력을 떨쳤으며 무덤안에 있는 관모가 신라 천마총과 비슷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나양국립문화재연구소의 저웅겸승학예실장도 『관모의 윗부분 장식이 신라나 가야 금관과 비슷하다』고 말해 「구로이와」씨와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고분의 주인공이 백제인이냐, 신라인이냐에 대한 논쟁은 앞으로 우관안에 들어있는 갖가지 부장품에 대한 정밀조사와 역사적 자료에 대한 분석이 범행된 후에야 밝혀질 것이다. 【동경=최철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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