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개혁 향해「조용한 걸음」|노 대통령의「청와대 100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노태우 대통령 취임 후 1백일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각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양태와 속도를 보노라면 우리가 마치 혁명적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취임직후 민주화와 권위주의의 청산이란 이름 하에 노 대통령에 의해 시도된 새로운 국정운영 스타일은 민정당의 총선 참패, 그로 인한 여소 야대의 정국구도 탄생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도처에서 새로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이 같은 사태발전이 노 대통령 자신이 의도하고 예측한 민주화의 과정인지, 아니면 리더 십의 변화와 힘의 이동에 따라 나타난 혼란으로 자칫 또 다른 갈등을 예비하는 것인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어쨌든 세상이 바뀌어도 이렇게 갑자기, 속절없이 바뀔 수 있을 까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이 노 대통령 취임 1백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물론 그같은 변화가 좋으냐, 나쁘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와 시각이 나오고 있으나 그 어느 것도 아직은 자신 있게 한쪽 방향이 절대로 옳다는 주장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 대통령이 잘 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는가 하면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의 25년에 걸친 권위주의 정치에 비교해 뭔가 불안하고 위험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1백일은 국민 각계각층에 다양한 환절기증후군을 유발시키고 있으며 각자 그것이 어떤 합병증으로 나타날 것인지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다.
갑자기 만개한 자유가 민주화를 실감케 해 좋기는 하지만 풀어 질대로 풀어진 법과 질서로 과연 나라가 제대로 발전하고 굴러갈 수 있을까 하고 우려하는 것이 정권과 직접 이해를 같이하지 않는 다수국민들의 느낌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지금시도하고 있는 자신의 정책과 스타일의 변화가 국민에 대한 약속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며 긍정적 사태진전을 거쳐 낙관적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믿고 있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은 우선 지난 1백일동안 국민들에게 자신이 정직하게 민주화를 실천할 대통령임을 인식시키는데는 성공하지 않았느냐고 보는 것 같다.
노 대통령 정권이 가장 힘주어 지적하는 긍정적 변화는 언론의 자유다.
누구나 신문·잡지를 발행할 수 있고 전직대통령의 공사생활을 무소불위로 파헤치는가 하면 노 대통령 자신을 시사만화의 소재로 삼는 언론계의 분위기를 큰「진전」으로 보고 있다.
비단 언론의 자유뿐만 아니라 역대 정권이 권력유지의 수단으로 써 온 정보·공작정치가 과감하게 청산되고 있다는 것 또한 노 대통령이 내세우는「국민의 뜻에 따르는 민주화」의 가시적 사례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민주화 최우선」자세는 야당의 3김씨로부터도 지지와 평가를 받았으며「레이건」미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가서「성공적 사례」로 거론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이 과연 성공적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를 다소 회의하는 분석과 논리가 엄 존하고 있음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이 같은 시각은 지금까지의 긍정적 변화가 노 대통령의 결심과 의지 하나로 가능한 것이었다면 앞으로 닥칠 과제는 노 대통령 혼자의 도덕적 당당함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을 대거 안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갑작스런 자유만개로 폭발하고 있는 욕구과잉과 그에 대한 공권력의 무력화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점점 악화되어 가는 노사분규, 좌경·폭력세력의 확대, 떼강도 등 치안사범의 급증은 공권력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노 대통령은 좌경·용공과 노사문제도 장기집권·부패등 사회의 건강 도를 해치는 구조적 요인을 자신이 앞장서 제거하면 잘 해결되지 않겠느냐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런 인식에 대해 가장 확신을 갖지 못하는 세력은 범 여권인 것 같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생각과 처방이 사회현상을 너무 안이하게 낙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또 민정당의 무력·무능은 노 대통령이 고민하고 있는 큰 과제중의 하나다.
스타부재의 인재난 속에 민정당을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것은 그가 과연 정권재창출의 의사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 열세인 국회를 통해 광주사태와 제5공화국비리를 정권에 결정적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수습하는 일도 노 대통령에게는 부담스런 과제중의 하나다.
이런 문제의 처리에 노 대통령이 자칫 중심을 잃으면 그의 민주화가 양파껍질을 벗기듯 수세에 몰릴 가능성을 점치는 견해도 있다. 민주화가 곧 공권력의 무장해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으리란 얘기다.
또 원화 절상과 올림픽 이후의 예상되는 불경기, 물가상승 등 경제적 불안요인을 「민주화」 하나로 대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민주정부는 약한 정부가 아니다. 국민지지 위에 선 정부가 얼마나 강력한가를 보여 주겠다』고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지만 대통령 취임 1백일이라는「밀월기간」이 끝나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하겠다. <전 육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