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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안 때렸다" vs. "저 사람 짓" 준희 죽음 누가 진실 숨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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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을 피해 황급히 법정을 빠져 나가는 내연녀 이모(36)씨.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부인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취재진을 피해 황급히 법정을 빠져 나가는 내연녀 이모(36)씨.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부인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덤덤한 표정으로 법정을 빠져 나가는 친부 고모(37)씨. 전주=김준희 기자

덤덤한 표정으로 법정을 빠져 나가는 친부 고모(37)씨. 전주=김준희 기자

"준희에게 단 한 번도 물리적인 폭력을 행한 적이 없습니다."(내연녀 이씨)
"제가 그날 본 게 이 사람(내연녀)이 한 행위들인데 오히려 제가 했다고 말하니까…."(친부 고씨)
다섯 살배기 여자아이는 제대로 꽃도 못 피우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 아이를 학대하고 숨지게 한 친부와 내연녀는 법정에서까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진실 공방'을 벌였다.

아동학대치사 혐의 두고 '진실 공방' #친부·내연녀 법정서 책임 떠넘기기

14일 오전 11시20분 전주지법 2호 법정.
'고준희양 학대치사 사건'에 대한 1심 2차 공판이 형사1부(부장 박정제) 심리로 열렸다. 준희양의 친부 고모(37)씨와 내연녀 이모(36)씨, 이씨의 모친 김모(62)씨가 수의를 입은 채 나란히 법정에 섰다. 뿔테 안경을 쓴 고씨는 머리를 스포츠로 짧게 잘랐고, 이씨 모녀는 마스크를 썼다.

생전 고준희(5)양 모습. [사진 전주지검]

생전 고준희(5)양 모습. [사진 전주지검]

고씨 등은 지난해 4월 선천성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던 준희양을 학대·방임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전북 군산의 한 야산에 암매장한 혐의(아동학대치사·사체유기)로 올해 1월 구속기소됐다. 고씨는 아동학대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일부 공소 사실은 부인했다.

고씨 변호인은 "피고인이 지난해 4월 24일 자정을 넘어 퇴근 후 전북 완주군 봉동읍 주거지 거실에서 피해자(준희양)가 밤에 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등과 옆구리 등을 수차례 발로 차고 짓밟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준희양의 사망 원인으로 꼽히는 갈비뼈 골절 등 상해를 입히는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는 취지다.

생전 고준희(5)양 모습. [사진 전주지검]

생전 고준희(5)양 모습. [사진 전주지검]

이날 심리를 맡은 박정제 부장판사는 피고인 모두에게 발언 기회를 줬다. 고씨는 "(검찰이) 제 딸을 밟았다는 그날(지난해 4월 24일~25일)은 딸아이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몸 상태였다"며 당시 건강이 악화된 준희양을 폭행한 사람이 내연녀임을 분명히 했다.

고씨 주장과 달리 이씨는 사체유기 등 나머지 혐의는 모두 인정하면서도 아동학대치사 혐의는 전면 부인했다. "스스로 서 있지도 못하는 피해자(준희양)를 수차례 억지로 일으켜 세운 후 바닥에 넘어지게 하고, 쓰러진 피해자의 몸을 발로 수차례 짓밟는 학대 행위를 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다.

생전 고준희(5)양 모습. [사진 전주지검]

생전 고준희(5)양 모습. [사진 전주지검]

이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은 피해자의 신체에 단 한 차례도 물리적인 폭행이나 상해를 가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외려 "고씨가 (준희양의) 사인이 갈비뼈 골절임을 알게 된 후 그 책임을 피고인(이씨)에게 전가하기 위해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또 "피해자의 갑상선 기능 저하증과 관련해 피고인은 피해자를 정기적으로 병원에 데려 가야 한다는 인식이 없어 병원 진료를 받지 않았다. 갑상선 약도 친부가 알려준 대로 복용시켰다"며 학대 혐의도 부인했다.

앞서 경찰과 검찰이 수사하는 내내 침묵을 지켰던 내연녀 이씨는 이날 법정에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씨는 "준희가 고씨의 폭행과 학대를 당하고 있을 때 지켜주지 못했고, 더 적극적으로 보호했어야 하는데 제가 방관하고 방임해서 준희를 그렇게 세상을 떠나게 만든 것에 대해서 깊이 반성한다"며 울먹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준희에게 단 한 번도 물리적인 폭력을 행한 적이 없다"고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고준희양 학대치사 사건'의 피고인들이 적힌 법원 안내문. 전주=김준희 기자

'고준희양 학대치사 사건'의 피고인들이 적힌 법원 안내문. 전주=김준희 기자

이씨는 "고씨는 왜 제가 준희를 보살폈던 것에 대해 다 본인이 했다고 하고 자기가 준희를 때린 부분에 대해선 저한테 덮어씌우는지 꼭 물어보고 싶다"며 "(고씨는) 자신의 범죄로 인해 저와 제 엄마, 제 아들, 준희, 준희 친구들까지 모두 고통받고 있는데 그 사람들한테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다. (재판부가) 진실을 꼭 밝혀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고씨는 이런 이씨를 흘겨 보거나 어금니를 연방 깨물었다.

반면 준희양의 시신 유기를 도운 혐의로 기소된 이씨의 모친 김씨는 "반성한다"며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과 이씨 측이 신청한 준희양 친모와 고씨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씨 측 변호인은 "갑상선 약을 애초 (친부에게) 얼마나 전달했는지 등을 질문하기 위해 준희양 친모를 증인으로 신청한다"고 말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28일 오후 4시30분 같은 장소에서 열리며, 준희양 친모에 대한 증인 신문이 이뤄진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재판을 마친 내연녀 이모(36)씨와 이씨 모친 김모(62)씨가 고개를 숙인 채 법정 밖을 빠져 나가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재판을 마친 내연녀 이모(36)씨와 이씨 모친 김모(62)씨가 고개를 숙인 채 법정 밖을 빠져 나가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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