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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차이나패싱 우려하는 중국의 속마음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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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베이징 특파원단]

지난 12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베이징 특파원단]

중국은 매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기간 중에는 외교 일정을 잡지 않는 게 관례다. 방북ㆍ방미 결과 설명을 위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방중도 처음엔 전인대 폐막후로 추진되다 12일로 급히 앞당겨졌다. 으례 일정조정에 진통을 겪기 마련인 시 주석과의 면담이 이번 만큼은 순탄하게 성사됐다. 더구나 양제츠 국무위원과의 회담은 식사를 포함해 4시간 넘게 이어졌다. 그만큼 중국에겐 방북,방미 당사자인 정 실장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들이 절실했다는 얘기다.

시 주석과 정 실장의 만남을 보도한 인민일보의 편집에서도 중국의 속내가 엿보인다. 전인대 기사로 지면을 도배중인 인민일보는 13일자에서 큼직한 악수 장면 사진을 포함한 기사를 1면 상단에 실었다. 그 행간엔 “한반도 정세의 변환 과정에서 중국은 뒷짐진 구경꾼이 아니라 주요 당사자”란 목소리가 숨어있다.

실제로 시 주석은 정 실장과의 면담에서 “국제사회는 중국이 제기한 쌍궤병행(雙軌竝行ㆍ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의 동시 진행)에 각국의 제안을 결합해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추진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셈범과 해법을 바탕으로 비핵화와 평화 협상을 이끌어 가겠다고 못박는 발언이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의 이면에는 ‘차이나 패싱’우려를 일축하려는 뜻이 엿보인다. 뒤집어 말하면 그런 우려가 중국 지도부와 전문가 그룹 사이에 실재(實在)한다는 얘기다. 중앙일보가 중국 전문가들과 접촉해 확인한 결과도 그랬다.

중국은 차이나 패싱을 ‘볜위안화(邊緣化)’ 즉 주변화란 용어로 표현한다. 차오신(曺辛) 중-아시아발전교류협회 이사는 “중국은 스스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라 말해온 한반도에서 이미 주변화됐다”고 말했다. 인터넷은 더 냉정하다. “한반도 정세 변환으로 최대의 타격을 입은 나라는 중국”이라며 “김정은 100점, 한국 80점, 트럼프 70점, 러시아 -10점, 중국 -100점”이란 채점표가 나돌 정도다.

이는 2000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와 큰 차이점이다.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DJ와의 회담을 2주 남짓 앞두고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江澤民) 주석과 의견을 조율했다. 하지만 지금의 북·중 관계를 볼 때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기는 어렵다.

중국이 더 우려하는 건 당분간 북ㆍ미 대화를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북핵 문제는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의 직접 대화를 통해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온 중국에겐 북ㆍ미 정상회담이 쌍수로 환영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성사 과정이 중국이 원하던 모양새가 아니란 점을 난감해 한다.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 교수는 “결과적으로 중국이 원하는 북·미 대화가 코앞에 다가오긴 했지만 중국이 나서서 이런 상황을 만들었더라면 더 없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를 베이징이나 중국의 다른 도시에서 하게 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그럴 경우 자연스레 중국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베이징에서 만나자고 합의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보인다.

중국 전문가들은 주변화에 대해 중국을 철저히 배제시키겠다는 북한의 노림수가 먹혀들어간 결과로 본다. 덩위원(鄧聿文) 전 학습시보(중앙당교 기관지) 부편집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중국이 한반도 문제, 특히 핵문제에 손을 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북한이 친미 국가로 바뀌면 중국에 큰 부담이 될 것이란 경계심도 있다. 차오신 이사는 “북한은 제2의 베트남, 즉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발판으로 북한을 이용할 수 있다”며 "미국과 수교한 북한은 지금의 베트남보다 더 버거운 상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진단은 중국의 대북정책이 과연 적절했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북한과의 거리두기가 결국 지렛대 상실이란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장롄구이(張璉瑰) 중앙당교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중국은 북핵 문제에서 방관자의 위치가 되고 말았다”며 “중국은 더 적극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해 책임질 건 책임지고 요구할 건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기 전망은 낙관론이 대세다. 주변화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북ㆍ미 정상회담을 거쳐 본격적인 비핵화의 길로 들어서면 결국은 6자회담 등 다자 회담을 통해 구체적인 협상이 진행될 것이란 점에서다. 중국이 빠진 한반도 평화체제나 대북 경제지원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진징이 교수는 “당분간은 북미 대화의 진전을 지켜보되 적절한 시기에 6자회담이 재개되면 이 속에서 중국이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리카이성 (李開盛) 상하이사회과학원 연구원은 “미국은 당근을, 중국은 탁자를 준비해 6자회담을 열고 모든 문제를 일괄타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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