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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치적으로 노사문제를 풀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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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해찬 전 총리가 노동부를 제치고 양대 노총 위원장을 만난 일, 권기홍 전 노동부 장관이 두산중공업 분규를 중재한 일,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한미은행 파업 때 대체인력 투입을 요청한 일 등 정부의 무원칙한 대응 방식을 지적했다.

이면합의를 한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인사조치하자는 김 전 장관의 제의를 청와대가 무시했고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때 긴급조정권과 관련해 총리실이 오락가락한 사실이 김 전 장관의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법에 따른 원칙을 보호해야 할 청와대.총리실이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장관 취임 전 진보적 경제학자로 통했다. 재임 기간 내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원칙을 지키려다 노동계로부터 퇴진운동에 시달렸다. 그러기에 그의 비판에 힘이 실리고 신뢰가 간다. 특히 "이 전 총리가 1980년대 버전으로 접근했다"고 한 대목에서 그의 용기를 읽을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2월 초 물러난 뒤 법에 어긋나는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철도노조 파업 때 공사 측이 일부 해고자를 복직시키려다 무산됐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법안 반대 등을 내세워 다음달 정치성 파업을 벌일 예정이다.

반면 사용자 쪽도 문제가 있다. 일부 장기 분규 사업장의 사업주가 노조를 교섭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고 용역 경비원을 동원해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의 지적대로 사측도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4월 국회에서 비정규직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고 민주노총 파업에 불법 행위가 있으면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 코오롱 회장 집을 침입한 해고 근로자들도 마찬가지다.

김 전 장관은 "제발 정치적으로 노사문제를 풀지 말라"고 말했다. 이는 장관이나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노동정책의 기준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