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세에도 유럽서 큰소리치는 '코리아 배터리 3인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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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세계의 공장' 중국의 공세에도 한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큰소리치는 대표 업종이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이다. 여기에 한 업종을 추가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큰 게 자동차용 배터리다. '배터리 3인방'인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 기술 리더십을 다지면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엔 유럽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SK이노베이션, 8일 헝가리 공장 기공식 #LG화학은 가동 시작, 삼성SDI는 2분기 완공 #CATL 등 중국업체들도 뛰어들 채비 #한·중 기술경쟁, 수주 경쟁 달아오를 조짐

SK이노베이션은 헝가리 코마롬에 연간 7.5GWh 규모의 생산 공장을 짓기 위해 8일 기공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은 "머지않아 전 세계 전기차에 SK배터리를 공급하게 되는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이 헝가리 코마롬에 지을 예정인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조감도. [사진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이 헝가리 코마롬에 지을 예정인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조감도. [사진 SK이노베이션]

코마롬 공장은 SK이노베이션의 '선 수주, 후 증설' 전략에 따라 유럽 완성차 업체와 체결한 장기 공급 계약을 기반으로 조성됐다. 짓고 나면 바로 납품할 곳이 있다는 의미다. 축구장 60개 크기인 43만㎡(13만 평) 규모에 향후 건설비, 운전자본 등으로 8402억원이 투입된다. 2022년에 시설이 모두 갖춰지면 SK이노베이션은 서산 공장(연간 3.9GWh)의 두 배에 달하는 국외 생산 거점을 확보하게 된다. 특히 이곳에서는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500km에 이르는 3세대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할 예정이다.

업계 맏형 격인 LG화학은 앞서 올 초 유럽 내 생산을 시작했다. 14억 유로를 투입해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지은 LG화학 공장은 유럽 내 최초의 대규모 배터리 생산 공장으로 불린다. 올해 약 10만 대의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앞으로 30만 대 수준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삼성SDI도 올 2분기 가동을 목표로 헝가리 괴드 지역에 공장을 짓고 있다. 3억 유로를 투입한 이 공장은 완공되고 나면 연간 전기차 5만 대에 공급할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국내 배터리 업체가 잇따라 동유럽에 진출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현재 유럽에는 양극판과 음극판이 조합된 '배터리 셀'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없다. 자동차 선진 시장인 유럽에서 전기차 핵심 부품의 공급처가 없는 것이다.
자동차 업체들이 가까이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의 본사는 독일 등에 있지만 생산공장은 체코·폴란드·헝가리 등 동유럽에 몰려 있다. 자동차 공장 가까운 곳에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세우면 무거운 배터리를 항공기나 선박으로 나르는데 들어가는 물류비를 아낄 수 있고 납품처 확보에도 유리하다. 이 지역의 인건비가 싸다는 점도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이다.

국내 3인방이 잇따라 생산에 나선 가운데 세계 최대 배터리 생산국인 중국도 유럽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스마트폰용 배터리 제조사인 ATL의 자회사인 CATL은 일본의 파나소닉과 이 시장 1, 2위를 다투는 업체인데 최근 유럽 진출을 선언했다. 미국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CATL은 독일·헝가리·폴란드 가운데 한 곳에 전기차 배터리공장을 지을 전망"이라며 "올해 6월 상장해 2조원가량의 자금을 확보한 뒤 이를 공장 확대에 투입하면 곧 1위 업체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술 주도 기업들이 속속 뛰어들면서 수주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중국이 최대 생산 국가라 해도 그간 중국 업체들은 우리나라 배터리 회사들이 개발하지 않는 LFP(리튬·인산·철)계 배터리를, 주로 중국내 완성차회사들에 공급해왔다. 하지만 최근 CATL은 우리 기업이 주로 개발하고 있고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많이 쓰는 3원계('리튬+니켈·코발트·망간' 또는 '리튬+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 개발에 뛰어들었다. 한·중 기술 경쟁이 본격화했다는 의미다.
청위췬 CATL 회장은 최근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우리에게 유럽은 큰 기회다. 우리가 대규모 투자를 벌이며 빠르게 성장했지만 한국 배터리회사들은 지난 2년간 기술적으로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다”며 노골적으로 경쟁심을 드러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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