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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혁명' 빛바래나 … 우크라이나 총선서 친러 정당 우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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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옛 소련 출신 독립국들을 휩쓸던 민주화 바람이 잦아들고 있다. 이른바 '색깔 혁명'의 퇴조다. 친러시아 정파가 득세하는 역 도미노 조짐까지 보인다. 26일 총선을 치른 우크라이나와 19일 대선이 끝난 벨로루시가 대표적이다.

빅토르 유셴코(사진)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04년 말 '오렌지 혁명'을 통해 집권한 이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아직 총선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서방에 우호적인 유셴코의 '우리 우크라이나당'이 승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최근 모든 여론조사에서 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총리가 이끄는 '지역당'이 30%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려왔기 때문이다. 우리 우크라이나당은 20% 남짓에 불과했다.

가장 큰 원인은 경제 악화다. 2004년 12%대였던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2%대로 떨어졌다. 올 1월엔 1.5%에 그쳤다. 동유럽 국가 중 최악의 성적표다.

러시아가 올 초 "가스 값을 두 배로 올려 달라"며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천연가스관을 틀어막았던 것도 유셴코 정권에 부담이 됐다. 유셴코가 지난해 9월 혁명 동지였던 율리야 티모셴코 총리를 갑자기 해임하면서 내부 분열이 생긴 것도 위기의 또 다른 원인이다. 티모셴코가 만든 독자 정파의 지지율은 15~17%로 우리 우크라이나당과 별 차이가 없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헌법을 개정해 그간 대통령이 임명하던 총리.장관을 의회에서 뽑도록 했다. 대통령은 외교.국방장관 지명권만 갖는다. 총선 패배는 곧바로 레임덕이란 얘기다. 유셴코 대통령에게 한가지 다행인 것은 어느 정당도 과반 득표가 어려울 것 같다는 점이다. 결국 연정이 불가피하다. '옛 동지'인 티모셴코와 다시 합치면 되겠지만 갈등의 골이 너무 깊다. 티모셴코가 총리직을 고집하는 것도 부담이다. 이러다 보니 유셴코-야누코비치의 '대연정'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성공할 경우 친러 세력이 화려하게 부활하는 셈이다.

벨로루시 대선에선 러시아가 지지하는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가 3선에 성공했다. 야당과 시위대가 저항하고 있지만 불과 몇 천 명 규모여서 큰 힘이 실리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벨로루시 당국의 폭력 진압에 항의하며 경제 제제와 여행 금지 등을 경고하고 나섰지만 루카셴코 대통령은 콧방귀도 뀌지 않고 있다. 러시아가 적극 지원하고 있고, 무엇보다 탄탄한 국영기업 덕에 경제가 제법 튼실하기 때문이다.

야당 지도자인 알렉산드르 밀린케비치도 "시위대가 20만~50만 명이 모였다면 독재자가 다른 나라로 도망갔겠지만 현실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고 털어놨다. AP통신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등 옛 소련 국가들의 선거에 전면 개입은 자제하고 있지만 막후에선 활발한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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